그런데 어떻게 하여 이 거목이 쓰러졌는가. 그것은 어이없게도 딱정벌레 때문이었다고 한다. 벌레는 나무 껍질을 파고 들어가 끊임없이 조금씩 조금씩 공격하여, 나무 내부의 활력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400년이란 긴 세월동안 벼락과 폭풍에도 굴하지 않았으나, 사람의 손끝으로도 문질러 버릴 수 있는 작은 미물인 벌레에게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한평생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자신을 지켜 왔다고 해도 한 순간에 명예를 잃고 무너지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볼 수 가 있다. 쌓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자신도 모르게 파고드는 작은 불평심, 원망심, 아상 자존심, 욕심 등등이 하나 둘 차곡차곡 가슴속에 쌓여서 어느 순간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큰 잘못은 바로 반성을 하지만 작은 허물은 '이것쯤이야'하고 그냥 넘어가 버리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성훈에 '구결구충망형(九結九蟲忘形) 외청내징광명(外淸內澄光明)이라 하셨다. 우리 마음속을 좀먹는 구결 구충이 무엇인가?
그 첫째가 색심 이요(心色結), 다음으로 때때로 올라오는 사심 망념(心邪結)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마음(心怨結)자신은 물론 남을 속이는 마음(心欺結) 물질에 이끌리는 마음(心慾結) 남을 미워하는 마음(心憎結)이다. 그리고 섭섭한 마음(心憾結)악한마음(心惡結), 복수심(心수結)이다. 이 아홉 가지 벌레가 우리의 마음을 좀먹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신 바 '자신의 못난 성질(性質)을 고쳐라' 는 가르치심이 무엇인가.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 아홉 가지 벌레들을 쳐내라는 가르치심일 것이다.
요즈음 세상은 날로 험악해지고, 우리를 유혹하는 이 '벌레'들은 더 많은 시험을 주고있다.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만 한다. 그야말로 도덕 무장(道德武裝)을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신라 시대 명장 김유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되새겨 보자. 청년 김유신은 천관녀라는 기녀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마음은 '가지 말아야지', '가서는 안되지' 하면서도 몸은 자신도 몰래 천관녀의 집을 향한다. 그리고 또 후회한다. 아마 '이번 한번만!' 하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 다짐했을 것이다.그러기를 또 얼마나 했을까. 어느 날 퇴근길에 김유신이 타고 가는 말은 으레껏 평소대로 천관녀의 집앞으로 주인을 모셨다.
비장한 각오를 한 김유신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 간 말의 목을 베어 버렸다. 올라오는 색심을 떨쳐 버리려는 그 과단성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고귀한 생명을 죽인 일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김유신 장군에게도 타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칼의 무장'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도덕 무장'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성훈에 '죽인다'는 뜻의 살(殺) 자는 단 하나뿐이다. 내 마음속의 아심 아적(我心我賊)을 잡아죽이라는 법문, "아심아적포기살(我心我賊捕氣殺)" 이다.
시시로 올라오는 이 못난 마음을 수시로 쳐내는 과정이 바로 수양의 과정이 아닐까. 그 동안 법을 앞세우기 보다는 인간심을 앞세워 '이것쯤이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신지신중(信知愼重)"하지 못한 점 깊이 반성 된다.
떠오르는 인간심을 인간적 의지로써 쳐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도심(道心)이 가슴속에 가득 차 있을 때 인간심은 자연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늘 도기가 충만하도록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