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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중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이
어느 대학 교수의 노력으로 알려지게 되어
그리고 그 부분에는
우리 고향 절이도 해전의 일부도 소개되고 있어 기사의 전문을
약간 편집하여 싣습니다.
절이도 해전의 전모를 나타낸 일기가 아니어서 조금은 아쉽지만
머지않아 그 부분도 밝혀지리라 기대하면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과 관련된 기존 기록들을 뽑아 필사한 17세기의 문서 ‘충무공유사(忠武公遺事·재조번방지초)’는 지금까지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담고 있다. ‘충무공유사’의 탈초(脫草·초서로 된 글씨를 풀어 씀)와 완역 작업을 수행한 노승석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대우교수의 번역을 토대로, 새로 발굴된 기록들 중 주요 내용들을 뽑아 소개한다. (2008.04.02.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1595년(을미년) 정월 10일


순천 부사(=이순신의 부하 장수인 권준·權俊)도 공사(公私)간의 인사를 하려는 것을 잠시 보류했다가 조금 뒤에 불러들였다. 이들과 함께 좌석에 앉아 술을 권할 때 말이 매우 잔혹하고 참담했다.(順天公私禮, 姑留之, 而有頃招入, 同坐饋酒之際, 言辭極兇慘.)


 - 이번에 발굴된 일기에는 부하 장수인 권준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이순신의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기존의 ‘난중일기’에선 찾기 어려운 부분이다. 당시는 전선이 교착 상태인 채 강화 회담이 전개되고 있었고,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은 군량 확보에 노력하면서 다시 닥칠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1595년(을미년) 정월 12일


삼경(자정쯤)에 꿈을 꾸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오셔서 분부하시기를 “13일에 회(이순신의 맏아들)를 초례(醮禮 : 전통 혼례)하여 장가보내는데 날이 맞지 않는 것 같구나. 비록 4일 뒤에 보내도 무방하다”고 하셨다. 이에 완전히 평소와도 같은 모습이어서 이를 생각하며 홀로 앉았으니, 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三更夢先君來敎, “十三日送醮, 往似有不合. 雖四日送之無妨”爲敎. 完如平日, 懷想獨坐, 戀淚難禁也.)


 - 돌아간 아버지 이정·李貞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기존 ‘난중일기’에는 전쟁 중에도 수시로 사자를 보내 어머니의 안부를 대신 묻게 하는 등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을 적은 부분이 많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쓴 부분은 거의 없었다.



●1595년(을미년) 정월 15일


우후(虞候 : 수군절도사 밑에 두었던 무관직) 이몽구와 여필이 왔다. 이편에 “이천주(李天柱)씨가 뜻하지 않게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경탄함을 이기지 못했다. 천리 밖의 땅에 던져진 사람이 만나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죽으니 더욱 애통과 슬픔이 심했다.(虞候李夢龜及汝弼來, 聞李天柱氏, 不意暴逝云. 不勝驚嘆, 千里投人, 不見而奄逝, 尤極痛悼.


- 이천주란 인물은 이순신의 지인으로 추정된다. 전란 중 벗을 잃은 애절한 심정을 표현했다.



●1595년(을미년) 정월 27일


오늘이 바로 맏아들 회가 혼례를 올리는 날이니, 걱정하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장흥 부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그의 서울에 있는 첩들을 자기의 관부(官府)에 거느리고 왔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乃 奠雁之日, 心慮如何? 長興佩酒來, 其京妾亦率來于其府云, 尤可駭也.)


- 전란 중에 혼례를 올리는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당시 관원들의 행태를 기록했다.



●1595년(을미년) 2월 9일


꿈을 꾸니 서남방 사이에 붉고 푸른 용이 한 쪽에 걸렸는데, 그 형상이 굴곡져서 내가 홀로 보다가 이를 가리키며 남들도 보게 했지만, 남들은 볼 수 없었다. 머리를 돌린 사이에 벽 사이로 들어와 그림용이 돼 있었고, 내가 한참 동안 어루만지며 완상하는데 그 빛과 형상이 움직이니 특이하고 웅장하다할만 했다.(夢西南間, 赤靑龍掛在一方, 其形屈曲, 余獨觀之, 指而使人見之, 人不能見. 回首之間 來入壁間, 因爲畵龍, 吾撫玩移時, 其色形動搖, 可謂奇偉.)



●1595년(을미년) 3월 24일


우수사(右水使=이억기)는 앉을 대청을 개수(改修)해 세우는 것을 나쁘게 여기고 헛소리를 많이 하며 보고해 왔다. 매우 놀랍다.(右水使以坐廳改立爲惡, 多費辭報來, 可愕可愕.)


-‘우수사’는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이던 시절 함께 해전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고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새로 발굴된 부분에서 이순신은 세 번에 걸쳐 이억기에 대해 못마땅한 심정을 적었는데, 역시 기존 ‘난중일기’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다.



●1595년(을미년) 4월 30일


아침에 원수(元帥=도원수 權慄)의 계본(啓本 : 임금에게 제출하는 문서 양식)과 기(奇)·이(李)씨 등 두 사람의 공초(供招 : 죄인의 진술)한 초안을 보니 원수가 근거 없이 망령되게 고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 반드시 실수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원수의 지위에 둘 수 있는 것인가. 괴이하다.(朝見元帥啓本及奇李兩人供草, 則元師多有無根妄啓之事, 必有失宜之責. 如是而可置元帥之任乎! 可怪.)


- 무척 당혹스런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전체를 통솔했던 도원수는 다름 아닌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장군이었다. 그는 당시 이순신 장군의 상관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각각 육군과 수군의 총사령관이었던 권율 장군과 이순신 장군 사이에 이와 같은 갈등이 있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순신의 일기가 대단히 솔직한 기록이었음을 알 수 있다.



●1595년(을미년) 7월 1일


내일은 아버지의 생신인데, 슬픔과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明日乃父親辰日, 悲戀懷想, 不覺涕下.)



●1595년(을미년) 8월 22일


강을 건너 주인집에 갔다가 그 길로 체찰사(體察使)의 하처(下處 : 임시 숙소)로 가니 먼저 사천현에 와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맞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우습다.

(渡江入主人家, 因到體察下處, 則以先到泗川縣宿, 而不爲迎命爲言, 可笑.)


- 기존 ‘난중일기’에는 이 내용의 앞부분에 ‘오후에 진주 남강가에 이르니 체찰사가 이미 진주에 들어왔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체찰사는 비상시에 임시로 지방에 파견해 군대를 지휘 통솔하는 역할을 맡은 관직이다. 고위 관료의 행태를 비웃는 자세가 보인다.)



●1595년(을미년) 10월 3일


오늘은 회(장군의 맏아들)의 생일이다. 그래서 술과 음식을 갖춰 주도록 예방(禮房)에 당부했다.(乃 生日, 故酒食備給事, 言及禮房.)



●1595년(을미년) 10월 21일


정사립(鄭思立 : 이순신의 비장)을 통해 들으니 “경상수백(慶尙水伯=권준)이 모함하는 말을 거짓으로 꾸미는데 내키는 대로 문서를 작성하고, 문서로 적게 되면 오로지 알려지지 않게 했다”고 했다. 매우 놀랍다. 권 수사의 사람됨이 어찌하여 그처럼 거짓되고 망령된 것인가?

(因思立, 聞“慶水伯飾誣陷辭. 倚指成文之, 而文之則專不聞”之云. 可駭可駭! 權水之爲人, 何如是誣妄耶?)



●1595년(을미년) 10월 28일


초경(밤 8시쯤)에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크게 일었다. 이경(10시쯤)에 우레가 치고 비가 와서 여름철과 같으니 변괴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初更狂風驟雨大作, 二更雷雨有同夏日, 變怪至此.)



●1595년(을미년) 11월 1일


조정에서 보낸 편지와 원흉(元兇·경상우수사 원균을 매우 낮춰 표현한 것)이 보낸 답장이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기만하는 말들이 무엇으로도 형상하기 어려우니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이 원균(元均)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

(朝報及元兇緘答則極爲兇譎, 口不可道. 欺罔之辭, 有難形狀. 天地間無有如此元之兇妄.)


- 이순신과 원균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았음은 기존 ‘난중일기’에서도 드러나지만, 이처럼 커다란 혐오감을 보인 대목은 없었다.



●1595년(을미년) 11월 4일


우리 나라의 병사들이 쇠잔하고 피폐한데 이를 어찌하랴.(我國兵殘力疲, 奈如之何?)



1598년(무술년) 7월 24일


복병장(伏兵將) 녹도 만호 송여종(宋汝悰)이 전선(戰船) 8척을 거두다가 적선 11척을 절이도(折爾島)에서 만나 6척을 통째로 포획하고 적군의 머리 69급(級)을 벴으며 용기를 발휘해 진영에 돌아왔다.(伏兵將鹿島萬戶宋汝悰, 斂戰船八隻, 遇賊舡十一隻于折爾島, 全捕六隻, 斬首六十九級, 賈勇還陣.)


- 전쟁 막바지에 조선 수군이 거둔 승리인 ‘절이도 해전’에 대한 기록이다. 절이도는 지금의 전남 거금도다. 이 승전은 지금까지 ‘선조실록’과 이순신의 조카 이분의 ‘행록’ 등에 단편적으로 등장했을 뿐 정작 ‘난중일기’에는 그 내용이 없었다.

  • ?
    김병옥 2008.04.02 17:21
    절이도해전 기록이 새롭게 밝혀진 부분이 있다니
    거금도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환영하는 바이다.
    다만, 새롭게 밝혀진 부분이 너무 단편적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새로 밝혀진 해전 기록에 대해서 몇가지 의문이 남는다.

    먼저,
    선조실록에는 절이도 해전일자가 7.19일 새벽인데
    난중일기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충무공유사"에는 해전 5일 뒤인 7월 24일자에 기록되어 있는 것인가?
    7.19자 해전이면 하루나 이틀뒤 즉 7.20일이나 21일에 기록해야 하지 않는가

    두번째로
    "충무공유사" 기록에는 절이도 해전이
    왜선 11척, 조선군선 8척이 벌인 해전으로 기록되었고
    실록에는 절이도 해전 승전 이유가
    장군께서 좁은 바닷길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는데
    적선 11척과 아군 8척 총19척이 참가한 해전에
    좁은 바닷길까지 이용해서 해전을 벌일 여지가 있는 것인가?
      *그 당시 군선은 아주 작은 배였음

    세번째로
    지금까지는 절이도 해전에서
    장군께서는 왜선 50여척을 손상시킨 것으로 알려 졌는데
    왜선이 총11척만 참전했다니?
    또 그중 6척만 나포했다니?

    네번째로
    이와 같은 의문때문에
    "충무공유사" 기록은
    7.19일날 장군께서 직접 지휘하신 절이도 해전이 끝난 후
    송여종 장군이 절이도에서 미처 철수하지 못한 왜군의 잔당을 소탕한 기록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무적이도 언급했듯이
    절이도 해전에 대한 전모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 ?
    무적 2008.04.04 11:13
    저는 선조실록을 접해 볼 기회가 없어 절이도해전 일자 및 규모를 알 수가 없지만

    위 선조실록의 내용이 김병옥님의 말씀대로라면

    난중일기에 쓰여진 내용은 김병옥님의 의견과 같이
    송여종 장군이 전후의 상황을 점검하다가
    절이도에서 미처 철수하지 못한 왜군의 잔당을 소탕한 기록일 것이다라는
    조심스러운 의견입니다.

    좀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역사의 현장을 찾아 알려 줄 사람!
    그 누구 없나요????

  • ?
    고산 2008.06.15 00:15
    모처럼 방문한 이곳에 두분의 깊이있는 논쟁을 보면서
    해박한 지식과 그리고 애향심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사실, 절의 해전이라고 말로만 들었지 전황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고 난중일기에 대해서도 귀하들처럼
    아는게 없어서 뭐라고 이곳에 글을 쓸수가 없군요

    김병욱님! 당신처럼 사학과역사 대해서 관심이있고
    뿌리가 깊은사람이 절이도 출신으로 있다는것 만도
    자랑스럽습니다
    바쁜일상에서 역사의 진실과 만난다는것은
    삶의가치를 탐구해나가는 경의로운일입니다
    두분의 아름다운 우정과 고향을 사랑하는 애향심에
    못난 선배 무릎을 굻고 배웁니다

    내 고향금산에  두분이 있다는 것 만도 자랑스럽고
    옛 고증을 탐색해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진실을 발견해가는 작업은
    뿌리의 정체성을 찾는 정신적 문화유산입니다

    아름다운 그대들이 있어
    오늘도 거금도가 빛이납니다













  • ?
    김병옥 2008.07.04 18:01
    위에서
    무적이와 저에 대해 과분한 칭찬의 글을 남기신
    "고산" 선배님이 누구신지 궁금합니다.

    고향을 아낀다는 것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고향 후배들을 대상으로
    애향심이 깊은 후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선배님께서는 어쩌면 무적이와 제보다도
    더욱 애향심이 깊으신 선배님이라 여겨 집니다.

    절이도 해전 기록이 자세하게 남아 있지 않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습니다만
    가장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이순신장군께서 임진왜란 전기간동안 하루하루 직접 기록하신
    "난중일기" 중 절이도 해전 부분을 포함한 약 6개월 동안의
    "일기" 부분이 어느 때인가 망실이 되어서
    우리의 고향 절이도 인근에서 벌어진 "절이도 해전" 기록이
    아주 단편적으로만 남아있게 되여 버렸습니다.

    몇번을 이야기 하지만 참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 6개월의 "난중일기" 부분이 어느 집 서고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적이 일어 난다면
    "절이도 해전"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우리의 고향 절이도(거금도의 조선시대 名)도
    새롭게 다시 깨어 나리라 믿습니다.

    그 기적같은 꿈을 가끔은 생각하면서

    선배님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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