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알았던 지리산을 처음 찾은 것은 17 ~ 18년 전 가을 직장야유회 때이다.
지리산의 제2봉인 반야봉(1,732m)을 오르기 위해 우리 직장의 선발대가 숙박지로 예정된 달궁계곡의 반선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지리산의 산등성이가 별빛이 무수한 밤하늘을 배경삼아 거무스레하게 비치는 밤 8시쯤이었다.
내가 차에서 내려 여장을 풀기 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지리산을 향하여 그 때까지만 해도 힘차게 갈겨지는 오줌발 세례!
그 오줌발 세례가 지리산의 산신령님을 노하게 하셨을까?
그 날 밤 직원들과의 고스톱에서 오야 한번 못 잡아보고 연전연패했으며 급기야 다음 날 새벽에는 화장실(푸세식으로 굉장히 깊었음)에서 지갑을 빠뜨렸으니......
물론 간 밤에 많이 잃어 지갑에는 돈이 거의 없어 아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소지하던 물건인데! 바닥이 너무 깊어 다시 주울 엄두도 못 내고 산행을 시작했으니 첫 대면치고는 너무나 큰 악연이었다.
다행히 발목을 덮는 낙엽의 푹신거림에 취해 별 어려움이 없이 반야봉엘 올랐고 내처 삼도봉과 노고단을 거쳐 하산하였는데도 젊은 시절이었는지라 아직도 체력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시 올라갔었던 길이 어떤 코스이었는지 조차도 기억에 가물거리는 오래된 추억이다.
두 번째 코스는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오르는 코스!
돌계단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코스는 다시는 찾지 말라는 경고로 생각하고 두 번 다시 가고 싶지도 않고 기억하기조차도 싫은 코스였다. 물론 당초의 종주하자는 계획을 취소하고 중도에서 포기했다.
세 번째 코스는 왕시루(리)봉 코스!
겨울이 막 시작되는 1989년 11월 말일까 12월 초순일까?
피아골 입구인 연곡사에서 시작한 우리(우리 내외와 어떤 분 내외)의 산행을 맨 처음 반긴 것은 뜻하지 아니하게도 한 겨울에 피어있는 한 무더기의 붉은 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산행 초입의 밭에 서 있는 감나무가 매달고 있는 홍시였다. 밭주인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지 마다 마다에 주렁주렁 열려 있는, 말 그대로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 서리를 맞은 홍시!
그 홍시에 손을 댄다는 게 어떤 죄에 해당되는지 생각조차 해 보지도 않고 우리는 그 홍시를 따서 먹었으니 주인에게 들키기라도 했으면!
다행히 우리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따서 먹고 그것도 모자라 가지고 간 코펠마다에 가득 채울 때까지 어느 누구도 “도둑 잡아라!”하고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지 않아도 코펠, 버너, 생수, 다진 고기, 소채, 쐐주 등으로 가뜩이나 무거운 배낭(당시에는 산이나 계곡에서도 식사를 조리해서 먹을 수 있었으며 돼지 삼겹살을 구워 쐐주 한 잔 하는 그 맛에 산을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을 더욱 무겁게 하여 눈이 무릎까지 쌓인 왕시루봉을 올랐으나 그 형용할 수 없는 홍시 맛에 취해 우리는 힘든 줄을 몰랐다.
네 번째 코스가 작년에 형님 내외와 백무동에서 하동바위 코스로 장터목산장을 경유하여 올랐던 천황봉!
천황봉 산행기는 이 거금도닷컴에서 간단히 어필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생략하고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지리십경의 하나인 천황일출을 보기 위하여 언젠가 다시 계획을 세워 도전해 보고 싶다.
그리고 이번(2005. 9. 10. 토요일)이 다섯 번째로 뱀사골 코스!
목표는 반선에 있는 지리산북부관리사업소에서 시작하여 뱀사골산장까지의 9Km, 왕복 18Km!
몇 달 간 산행을 못해 부실해진 하체 때문에 당일치기가 조금은 염려되었지만 급경사가 아닌 완만한 계곡길인 것을 믿고 아내하고는 1주일 전부터 결행하기로 합의를 하였고 딸랑구도 꼬셨다.
처음에는 갈까 말까를 고민하던 딸랑구도 당일 새벽에 깨우니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 나선다.
간단히 여장을 꾸리어 나의 애마로 88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남원인터체인지, 적령치를 거쳐 반선에 도착하니 10시 10분(집에서부터 110Km, 2시간 소요됨, 되돌아올 때는 지리산인터체인지를 이용하니 거리는 10Km 정도 더 되었으나 시간은 1시간 40분이 소요됨).
신발을 갈아 신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 출발하니 10시 20분이다.
자, 이제부터 걷는 일만 남았다.
굽이굽이 9Km를 흘러내리는 뱀사골의 아름다운 沼와 潭을 눈과마음에 새기기 위하여 첫발을 힘차게 내 딛는다.
용이 머리를 흔들고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요룡대(출발지에서부터 2.2Km 지점. 이하 같다)까지는 자연탐방로라는 이름으로 계곡을 따라 새로 만든 길과 기존의 길(차도)로 구분되어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요룡교를 지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자연탕방로를 이용하여 등산을 하여야 하는데 계곡은 2005. 12. 31.까지 자연휴식년제로 진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아직까지는 힘이 남아 기기묘묘한 바위에 눈길을 주고 우렁우렁 흐르는 계곡물소리를 벗 삼아 하늘거리며 올라가니 용이 허물을 벗고 승천하였다는 탁용소가 반긴다.
바위마다에 깊게 패인 웅덩이들이 100여 m에 걸쳐서 조그마한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그게 바로 용이 승천하기 위하여 내디딘 발자국이란다.
저 맑고 시원한 계곡물에다 두발을 담그고 다리 쉼을 하며 술이라도 한 잔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자연을 보존하기 위하여 휴식년제를 지정했으니 우리가 지켜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래는데 자칭 인어(몇 년 동안 연습한 수영실력으로 그렇게 불리어짐!)라는 마눌님도 연방 저 물 속에 덤벙 뛰어들어 헤엄을 치고 싶단다.
아서라, 말아라!
그냥 눈으로 마음으로만 느껴도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걸리면 돈이 안만데!)
계곡의 모양이 병처럼 생겨 수심이 깊고 물의 색깔이 진한 병소(3.7Km 지점)를 내려다보며 다리 쉼을 하다가 다시 땀을 흘리며 허위적 허위적 올라가니 병풍소와 제승대(5.5Km)를 지나 간장소(6.5Km)에 이른다.
간장소 !
하동지방에서 소금을 팔기 위하여 화개재를 넘어 온 보부상들이 쉬어 가던 중 소금이 물에 빠져 녹아서 물의 색깔이 간장색으로 보여 간장소라 불리운단다.
작금의 우리야 건강을 위해서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 취미 삼아 이 깊은 계곡과 높은 산을 찾는다지만 당시의 그네들은 오로지 살기 위해서 이 험준한 고개 길을 넘었을 걸 생각하면 그분네들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힘겨웠을까?
한 짐의 소금을 팔아 그들은 무엇을 샀을까?
또 그들은 그 무엇을 등에 지고 다시 이 험준한 고개를 넘었을 터인데!
이제 목적지까지 2.5Km를 남겨 두고 있다.
길도 점점 가파라지고 험해 진다.
안개에 젖어 채 마르지 않은 돌 길이 많이 미끄럽다.
아침을 일찍 먹고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허기가 진다.
손목시계도 정오를 훌쩍 넘어 1시에 가깝다.
그래, 쉬어가자.
가져온 과자와 캔맥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피곤과 함께 온 허기가 얼른 가시지 않는다.
딸랑구는 저 계곡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이다. 그러나 집사람은 한사코 목적지인 산장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어야 된다며 딸랑구를 재촉한다. 여기에서 점심을 먹었다간 도저히 목적지까지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우리가 너무 심하게 재촉하면 다음부터는 딸랑구가 따라오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지친 몸을 추스르고 딸랑구를 달래고 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니 오후 1시 50분.
산장의 매점에서 컵라면 2개를 사서 끓여 가져온 도시락과 함께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기념사진 몇 컷!
한 마리의 이쁜 다람쥐가 사람 무서운 줄도 모르고 우리의 발 밑을 조르르 기어다니는 것을 보니 자연(=깊은 산) 앞에서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 등 모든 살아 있는 생물체가 서로 다르지 않고 일체인 모양이다.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는 것!
이제 다시 하산해야 한다.
겨우 2.5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반야봉을 못 오르고 하산해야 하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이 다음에 노고단을 거쳐 임걸령, 삼도봉을 돌아보고 반야낙조를 맛보겠다는 생각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지만 내려오는 발길이 못내 무거운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화개재에서 시작하여 양쪽에 반야봉과 명선봉을 끼고 10Km 이상을 내달리는 뱀사골은 계곡과 바위 틈틈이서 흘러나온 물이 모아져 내를 만들었고 또 틈틈이서 흘러나온 물이 또 모아져 소를 만들었으며 또또 틈틈이서 흘러나온 물이 또또 모아져 소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어 때론 작은 폭포를 이루고 때론 막히면 휘돌면서 몇 억겁을 그렇게 그렇게 흘러내리며 우리에게 말없이 인간이 살아갈 순리와 윤회사상을 가르쳐 주고 있었구나!
나이를 먹어 감에 체력은 점점 저하되어 가는데 앞으로 찾아야 할 산은 많으니 내 언제 다시 이 곳에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지난 9월 3일에 강진에 있는 만덕산 산행을 같이한 아내(아내는 또 주중에 수덕사가 있는 숭덕산에 다녀왔음)와 딸랑구가 이번에도 같이 해 주었고 아직까지는 종아리가 조금은 아프다지만 또 다음에도 같이 할 것을 기대해 보며 추석절이 지나고 난 뒤의 휴일에는 덕유산에나 오를까! (누구 같이 갈 사람 없남요?)
쇠머리의 초입이 너무도 고즈넉하여
가로등이라 생각하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