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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거금도의 추억

by 박부자 posted Nov 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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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31_ocheon05.jpg



도회의 문화권에서 변함이 없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계절이 여름인가 보다.
생동감있게 파닥거리는 물고기 모습으로 자연의 저 깊숙한 곳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사람들에겐 누구나 다 잠재해 있지 않을까? 마음들이 얼키고 설키인 사람들과 더불어 여름속 공동체를 만들어 본다.

몇 해에 걸쳐 꿈을 부풀리며 장래를 위하는 마음으로 노력과 담의 응결지인 고흥군 금산면 오천리 거금도 땅에. 바닷가 작은 초원의 집인 나선생님의 꿈의 궁전에 초대 받게 되었다.
98년 7일 27일 월요일. 광주에서 홍길씨 승용차에 인식씨와 몸을 실으며 여유로운 마음들도 같이 실어보았다.

가을날처럼 하늘은 파아랗고 드높으며 여유있고 편안한 뭉게구름들이 떠 있어 마음을 산뜻하게 불러내는 날이기도 했다.
녹동의 부둣가, 철선이 운행하는 시끌벅적한 장터까지 마중온 나선생님 내외분을 만나 승용차와 함께 철선을 탔다.
소록도가 이웃동네처럼 보이는 부두에서 약 20분을, 크고 작은 섬들을 뒤로하며 거금도에 발을 딛어본다.

내 나라 섬들 중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섬인 거금도, 논농사는   물론 멸치잡이, 청각, 미역의 생산지인 거금도는 해초류를 말리느라고 갯내음이 물씬 물씬 코끝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어촌이기도 했다.
이 어촌의 한 귀퉁이에 보리밭이 변해 그림같은 아담한 궁전이 탄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열과 땀방울을 적셨겠는가!

그림같은 초원 위의 별궁에서 그윽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돋는 듯 하다.
철새가 머물렀고 산새가 울었으며 잠자리 메뚜기의 낙원인듯한 곳에 이제 우리가 여름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러 왔고 따뜻한 사람들과 더불어 소 궁전에서 24시간의 애향의 삶의 역사를 만들어 본다.

그 밤에 나는 설레임으로 파도 소리와 더불어 잠못 이루는 여름이었다.
뜰 아래까지, 베개 속까지, 파도는 왔다가 가고, 소라 껍질 속, 꿈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가 깻다가 했는가 싶다.

고향같은 드넓은 바다, 구만개의 물줄기가 모여와도 변함없는 바다, 쪽빛 바다, 등대 넘어 노스탈쟈 한 폭, 수평선 끝자락에 그림같이 떠 있는 고기잡이 배들.

이 작은 궁전의 뜰 아래까지 넘실넘실 너울은 밀려오고 그 물결들 위에 갈매기의 노래들이 있고 끝도 시작도 없이 애향의 몸짓으로 철석이는 파도곁에, 공룡만한 거대한 동물이 수 없이 많은 알을 낳았는가? 그 알들이 세월 속에서 화석처럼 굳어 버렸는가? 내 몸체보다 더 큰 타원형의 동글동글한 돌들이 모래와 더불어 어우려져 있었다.

큰 바다가 울었던 날, 우리는 태풍이라 이름한 어느 날들은 이 수 없이 많은 공룡알들이 신비스럽게도 사라졌다가 또 다시 큰 바다가 울고 난 다음에 깜짝 놀랄만큼 많은 화석덩이들이 모래 위에 수천 개가 쌓였었다는 그 전설적인 돌들이 있던 날이다.

그 밤, 우리는 끊임없이 물결이 일렁이는 모래사장 위, 궁전의 잔디가 덮인 마당 위에서(약5m쯤의 높이) 별이 떠오르지 않은 세미한 이슬비 내리는 밤에 숯불을 피우고 그 화덕을 중심으로 8명이 둘러 앉아 숨어버린 별의 얘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했다.
알퐁스도데의 『별』의 순박한 사랑 얘기들을 떠 올렸지만 그 밤엔 영영 별이 떠 오르지 않았는가 싶다.

많은 반딧불이 떠 다니는 성숙한 여름 향기를 묻혀오는 밤에, 우리는 싱싱한 아나고를 화덕에서 구워 못마시는 소주 한 잔을 삶의 보약처럼 탁자에 올려 놓고, 일상의 삶의 무대는 옛날, 그 옛날의 일처럼 저 편에 밀어 내어 놓고 밤이 좋아 파도소리가 좋아 드넓은 바다가 좋아 고깃배의 일렁이는 불길이 좋아 화덕 위의 아나고 맛에 흥취되어 끝없이 낭만이 이어지던 밤이었다.

뒤이어 능숭어의 매운탕을 올려 놓고, 저녁 한 술을 권하는 이 궁전의 마마님은 우리의 낭만 위에다 먹는 즐거움까지 안겨 준다.

쑥을 태우는 모깃불에 흠씬 취하고, 매운탕 맛에 취하고, 한 잔 술에 취하면서,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게 나뉘었던 대화들을 가슴 속에 모아 가며 보내는 밤이었기에 그 밤에는 결국 잠에 들지 못하고 그 파도 소리 때문에 설레이는 시간들이었다.

밤새 이슬에 젖어 잔디가 축축한 새벽의 바다에 나서보니 공룡알들 저만치 물길은 물러가 있었다. 썰물이 되었다가 밀물이 되어 되돌아 오는 간만의 차이 속에서 공룡알과 더불어 섞였다가 헤어지는 새벽의 바다는 밤과 또 다른 싱그러움이 있었다.

탁 트이지 못한 새벽산이 짙은 안개를 내내 허리에 감싸안고 오래도록 진통을 하는 듯 하더니 수평선 저 아래서부터 떠 오르는 태양에 서서히 안개가 밀려가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가 드리웠다가 감미롭게 열리는 이 바닷가에 서서 나는 작은 종이배가 되어 망망대해로 떠나보고 싶었다.

늘 꽉 채워지지 않은 허허로운 삶 속에서, 그 삶의 무게를 저울질 해 본다면 종이배 같은 가벼운 모습들인 것을 우리는 아웅다웅 하며 살아 왔는가?
피나는 노력과 암울했던 날들을 떠 올리며 삶의 물음표에 대한 어떤 대답을 요구 한다면 자연 속에 서 있는 이 순간들, 어둠과 더불어 나누었던 대화들이야 말로 짜릿한 행복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새벽녘 모래가 쓸려가는 바닷물에 발을 적시면서 송사리 떼들처럼 속살을 부비면서 몸을 엎어 보고 뒤집어 보고 싶었다

어느새 궁전의 마마님께서 구수한 된장국에 감칠맛나는 낙지볶음으로 아침부터 식욕을 돋구이는 바람에 식사의 질서조차 무시해 버리고 두 공기 밥을 거뜬히 먹게 하누나.
서서히 짙어 가는 여름 태양열의 유혹으로 바닷물에 몸을 섞으며 어느 새 여름 속에 흠씬 젖어본다.

간밤에 보았던 불빛 일렁이던 고기잡이 배가 이 한 낮에는 장난치는 개구쟁이들의 화려한 요트로 변신하여 물길을 가르면서 노니는 모습도 보게 된다.

대여섯끼리 어울려 물길에 뛰어 들어 헤엄치며 물장구치며 다시 요트에 기어 오르고 또 물에다 밀쳐 넣고, 도망치며 깔깔웃는 개구쟁이들을 보며 나는 또 하루의 살맛나는 인생을 보는 듯 하였다.

도회지에서는 학교란 울타리 안에서 학문의 그물망을 기어 오르는 해맑고 연약한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깜둥이 개구쟁이들의 모습 속에는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만끽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바닷가가 삶의 터전인 그들에게는 바다에서 몸을 구르고 검게 그을린 피부를 노출하면서 사는 맨발의 옛된 모습들이야 말로 어떤 삶의 파도가 닥쳐와도 능히 이길수 있는 단련된 체력과 의지가 숨어 있는 듯 하다.

시골 속의 화려한 외출은 이 백사장에서 이루어 졌는가?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순박한 시골 풍토적인 이 백사장에서, 향토적인 냄새를 드리우는 여름이 있었다.

그 물장구치는 장난꾸러기들 속에서 우리 마음도 곁들어 노출되어 한껏 즐거운 여름파티가 이루워 지기도 했으며 또한 그 마음들을 바다에 묻어 두는 해녀의 넋인양 이 바다를 떠난다면 그리움이 98년도 여름과 함께 삶 속에서 찰싹거리리라.
이 풍요하고 아름다운 여름을 우리에게 안겨 주기까지 이곳에서 몇년의 피와 땀방울을 흘리신 나선생님 내외분과 그 동생 내외분께 마음으로 드리는 무지개빛으로 어울어진 꽃다발을 드리고 싶다.

이 해풍이 깃든 잔디 위에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섹스피어의 오필리아가 영혼의 벽을 뛰어 넘는 『탱고』를 이루는 환상의 밤들이 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훈민이네 집의 짜릿한 행복들이 이 곳에서 알뜰살뜰 피어 오르기를 바라며, 우리 공동체 24시간의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석양녘 철선에 다시 몸을 실으며 광주를 향해 밤을 달려 왔다.


  ⊙ 발표문예지 : 크리스찬문학
  ⊙ 수록시집명 :  
  ⊙ 수록산문집명 :  
  ⊙ 수록동인집명 :  
  ⊙ 발표일자 : 2000년03월   ⊙ 작품장르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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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1. 거금도의 추억

    도회의 문화권에서 변함이 없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계절이 여름인가 보다. 생동감있게 파닥거리는 물고기 모습으로 자연의 저 깊숙한 곳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사람들에겐 누구나 다 잠재해 있지 않을까? 마음들이 얼키고 설키인 사람들과 더불어 여름속...
    Date2002.11.06 Category수필 By박부자 Views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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