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2004년) 한 해는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해였습니다.
1월
추운 날씨에 집을 짓겠다고 무작정 터파기를 하여 집짓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마을에 중앙으로 도로가 확포장을 하니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춥지만 강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추위에도 아랑곳하질 않고 일은 착착 진행이 되어 갈 즈음에
2월
저의 부주의로 축사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적잖은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되었습니다.
3월
딸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드디어 우리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마을 위에 웅장하게 그 자태를 드러내던 날
이제 우리에겐 힘들고 어려운 일은 오지않고 즐겁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어 나가리라 맹세했습니다.
4~5월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우리 농부들의 일 손을 바쁘게 하였습니다.
마늘 양파를 수확한 빈 들판에 고추 심으랴, 참깨 심으랴, 콩 심으랴, 모내기 준비하랴
우리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하여 구슬같은 땀방울을 흘렸습니다.
6~8월
대지가 푸르름으로 덮어 갈 즈음,
유월에 제6호 태풍 디엔무를 시작으로 지리한 장마와
7월의 제7호 태풍 민들레와 제10호 태풍 남테오른과
8월에 제15호 태풍 메기 제16호 태풍 차바등
우리 지역을 직간접으로 스쳐간 장마와 태풍 때문에 하루도 긴장을 늦추지를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 중에 북한에서 명명했다던 태풍 민들레가 우리에겐 가장 크게 다가와서 내게는 하우스 한 동을 삼키고 가버렸습니다.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면서 가벼히 여겼던 자연이 그렇게도 무서운 힘을 발휘함에
저는 자연앞에서 겸손함과 낮춤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자연은 내겐 큰 스승으로 왔다가 갔습니다.
자연이 우리 인간들에게 겸손을 가르치면서 지나가는 동안에 제게는 기쁜 뉴스가 있었습니다.
제 아들 녀석이 2004~2005학년도 고등학교 학생회장에 당선되었거든요. 이 일도 제겐 뉴스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축사에 지어놓은 말벌집을 건드려 그 놈들에게 쏘여 혼이 난 적도 있었답니다.
9~10월
지난 여름에 찾아온 태풍이 부족 하였던지 달 초에 제18호 태풍 송다가 북상하면서
우리들을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 넣더니 때아닌 가을 장마가 시작되어
여름 내내 땀흘려 지은 농작물의 수확에 엄청난 타격을 주더군요.
그래도 우리 농부들은 자연으로부터 무한한 혜택을 부여받아
하루하루를 감사해 하면서 한 톨의 곡식이라도 거두었습니다.
흡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풍성한 가을을 맞았습니다.
11~12월
한우자조활동자금관리대의원에 당선된 일도 내겐 뉴스거리로 남습니다.
好事多魔라고 했던가요.
그 동안 기쁘고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겨울들어 찾아온 좋지않은 일들이 2004년을 보내는 나를 더욱 슬프게 하였습니다.
아내의 위암 판정으로 내겐 너무나 아프고 슬픈 한 해가 되어 버렸습니다.
11월 중순경에 위내시경(고흥종합병원)을 실시 하였는데
의사께서 조금 이상하니 큰 병원에가셔서 종합검사를 받아 보라시면서 제게 위암증상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너무나 예상치 못한 소리에 저는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다시 한 번 더 말씀해 주시라고 했더니 확실치는 않지만 의심이 간다고 하시면서
빨리 대학병원으로 모시고 가라시더군요. 앞이 캄캄했었습니다.
밖에 있던 아내는 눈치를 챘었나 보데요.
저는 아내에게 사실을 얘기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신촌세브란스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위암라더군요. 그러면서 초기이니 안심하라더군요.
요즘은 의술도 발달했을 뿐 더러 초기 암 진단은 90%이상 완치의 가능성이 있으니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는데 그래도 우리같은 문와한들은 어디 그렇습니까?
암이라는 병은 걸렸다 하면 모두가 잘못된다는 사고가 박혀있어 하루하루가 근심과 걱정의 나날들이 었습니다.
여러가지 검사를 끝내고 12월 16일날 드디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복강경수술로 위를 2/3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회복이 빨라서 21일날 퇴원을 하여 지금은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이 일로 제게 여러모로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오며
바쁘신 와중에도 병원까지 찾아오신 평택의 종상이 동생 부부와
서울의 은정아,복심아,윤숙아,경민아.양석아,성휘야,서자 누님,삼례야, 홍자야
그리고 먼 길을 비행기를 타고 찾아주신 고향의 기환이 친구, 성윤이 친구등
또 신광민 선배님,무적 형님, 마전식 형님,마채홍,노완숙 친구, 장태만 동생등
전화로 위로를 잊지않으심에 너무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주안아, 수언아, 향자야 고맙다.
이런 크나큰 일들은 저희 내외가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으니 찾아온 거라믿고 꼭 이겨나갈겁니다.
제 아내는 지금 양호합니다. 다른 장기로는 전혀 전위는 안되었으며 현재로는 재발의 워험도 없다는 의사의 소견입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하여 손을 쓸 수 있게 해주신 고흥종합병원의 3내과 부기범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림니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헛 소릴 늘어 놓은 것만같아 죄송하지만
가는 해에 잠시 저의 발자취돌아 보건데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적어 보았으며,
시골에 내려와 관심있게 둘러 본 결과 의외로 우리 고향에도 암과의 전쟁을 벌이고 계신 딱한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그런분들께 꼭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힘내세요. 그러면 당신들께도 언젠가는 웃을 날이 올겁니다. 꼭 힘내세요.
이곳 거금도를 한 번이라도 방문을 하셨던 모든 분들과 우리 골몰 향우님들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 분들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한 을유년을 맞으시길 빕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마을 소식을 전합니다.
내년 을유년에 우리 마을을 이끌어 나가실 이장님에 작년에 하셨던 이영선님께서 재신임을 받았습니다.
향우님들 축하해 주세요.
1월
추운 날씨에 집을 짓겠다고 무작정 터파기를 하여 집짓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마을에 중앙으로 도로가 확포장을 하니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춥지만 강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추위에도 아랑곳하질 않고 일은 착착 진행이 되어 갈 즈음에
2월
저의 부주의로 축사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적잖은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되었습니다.
3월
딸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드디어 우리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마을 위에 웅장하게 그 자태를 드러내던 날
이제 우리에겐 힘들고 어려운 일은 오지않고 즐겁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어 나가리라 맹세했습니다.
4~5월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우리 농부들의 일 손을 바쁘게 하였습니다.
마늘 양파를 수확한 빈 들판에 고추 심으랴, 참깨 심으랴, 콩 심으랴, 모내기 준비하랴
우리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하여 구슬같은 땀방울을 흘렸습니다.
6~8월
대지가 푸르름으로 덮어 갈 즈음,
유월에 제6호 태풍 디엔무를 시작으로 지리한 장마와
7월의 제7호 태풍 민들레와 제10호 태풍 남테오른과
8월에 제15호 태풍 메기 제16호 태풍 차바등
우리 지역을 직간접으로 스쳐간 장마와 태풍 때문에 하루도 긴장을 늦추지를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 중에 북한에서 명명했다던 태풍 민들레가 우리에겐 가장 크게 다가와서 내게는 하우스 한 동을 삼키고 가버렸습니다.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면서 가벼히 여겼던 자연이 그렇게도 무서운 힘을 발휘함에
저는 자연앞에서 겸손함과 낮춤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자연은 내겐 큰 스승으로 왔다가 갔습니다.
자연이 우리 인간들에게 겸손을 가르치면서 지나가는 동안에 제게는 기쁜 뉴스가 있었습니다.
제 아들 녀석이 2004~2005학년도 고등학교 학생회장에 당선되었거든요. 이 일도 제겐 뉴스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축사에 지어놓은 말벌집을 건드려 그 놈들에게 쏘여 혼이 난 적도 있었답니다.
9~10월
지난 여름에 찾아온 태풍이 부족 하였던지 달 초에 제18호 태풍 송다가 북상하면서
우리들을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 넣더니 때아닌 가을 장마가 시작되어
여름 내내 땀흘려 지은 농작물의 수확에 엄청난 타격을 주더군요.
그래도 우리 농부들은 자연으로부터 무한한 혜택을 부여받아
하루하루를 감사해 하면서 한 톨의 곡식이라도 거두었습니다.
흡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풍성한 가을을 맞았습니다.
11~12월
한우자조활동자금관리대의원에 당선된 일도 내겐 뉴스거리로 남습니다.
好事多魔라고 했던가요.
그 동안 기쁘고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겨울들어 찾아온 좋지않은 일들이 2004년을 보내는 나를 더욱 슬프게 하였습니다.
아내의 위암 판정으로 내겐 너무나 아프고 슬픈 한 해가 되어 버렸습니다.
11월 중순경에 위내시경(고흥종합병원)을 실시 하였는데
의사께서 조금 이상하니 큰 병원에가셔서 종합검사를 받아 보라시면서 제게 위암증상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너무나 예상치 못한 소리에 저는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다시 한 번 더 말씀해 주시라고 했더니 확실치는 않지만 의심이 간다고 하시면서
빨리 대학병원으로 모시고 가라시더군요. 앞이 캄캄했었습니다.
밖에 있던 아내는 눈치를 챘었나 보데요.
저는 아내에게 사실을 얘기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신촌세브란스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위암라더군요. 그러면서 초기이니 안심하라더군요.
요즘은 의술도 발달했을 뿐 더러 초기 암 진단은 90%이상 완치의 가능성이 있으니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는데 그래도 우리같은 문와한들은 어디 그렇습니까?
암이라는 병은 걸렸다 하면 모두가 잘못된다는 사고가 박혀있어 하루하루가 근심과 걱정의 나날들이 었습니다.
여러가지 검사를 끝내고 12월 16일날 드디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복강경수술로 위를 2/3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회복이 빨라서 21일날 퇴원을 하여 지금은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이 일로 제게 여러모로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오며
바쁘신 와중에도 병원까지 찾아오신 평택의 종상이 동생 부부와
서울의 은정아,복심아,윤숙아,경민아.양석아,성휘야,서자 누님,삼례야, 홍자야
그리고 먼 길을 비행기를 타고 찾아주신 고향의 기환이 친구, 성윤이 친구등
또 신광민 선배님,무적 형님, 마전식 형님,마채홍,노완숙 친구, 장태만 동생등
전화로 위로를 잊지않으심에 너무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주안아, 수언아, 향자야 고맙다.
이런 크나큰 일들은 저희 내외가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으니 찾아온 거라믿고 꼭 이겨나갈겁니다.
제 아내는 지금 양호합니다. 다른 장기로는 전혀 전위는 안되었으며 현재로는 재발의 워험도 없다는 의사의 소견입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하여 손을 쓸 수 있게 해주신 고흥종합병원의 3내과 부기범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림니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헛 소릴 늘어 놓은 것만같아 죄송하지만
가는 해에 잠시 저의 발자취돌아 보건데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적어 보았으며,
시골에 내려와 관심있게 둘러 본 결과 의외로 우리 고향에도 암과의 전쟁을 벌이고 계신 딱한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그런분들께 꼭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힘내세요. 그러면 당신들께도 언젠가는 웃을 날이 올겁니다. 꼭 힘내세요.
이곳 거금도를 한 번이라도 방문을 하셨던 모든 분들과 우리 골몰 향우님들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 분들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한 을유년을 맞으시길 빕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마을 소식을 전합니다.
내년 을유년에 우리 마을을 이끌어 나가실 이장님에 작년에 하셨던 이영선님께서 재신임을 받았습니다.
향우님들 축하해 주세요.
어렵고 힘든 고통을 참고 이겨내느라고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을까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평소에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듬직한 친구라고 믿고 있어
친구야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니
나는 고마울 뿐이다.
친구야 집사람 빨리 회복하셔서 건강한 모습을
다시 찾기를 기도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