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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9]

     나는 데뷔에서 은퇴까지 3000회를 넘게 경기를 치렀다. 한 경기당 박치기를 10회 정도씩 했으니 수치상으론 3만 회 이상 박치기를 한 셈이다. 난 박치기 후유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지는 멀쩡하다. ↑ 팬들 중에는 내가 기억상실증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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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50]

    나의 삶 이야기가 어느덧 50회째를 맞고 있다. 내가 레슬링을 하면서 박치기 후유증으로 인해 지금까지 머리 통증에 시달린다는 기사를 본 팬 중 한 분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경기도 분당에 산다는 50대 초반의 문모씨는 "선생님이 박치기할 때 난 너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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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51]

     스승 역도산은 가끔 나를 자신의 승용차 캐딜락에 태운 후 동경 시부야로 갔다. 그곳엔 스승의 꿈이 실현되는 한 전당이 세워지고 있었다. 일명 '리키 스포츠 팰리스'였다. 스승의 일본식 발음은 리키도잔이었다. 리키에 스포츠 팰리스를 붙여 리키 스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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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52]

     스승 역도산은 돈과 사업에 관한 동물적 감각을 타고 났다. 지금이야 흔한 것이 스포츠 센터지만 어떻게 1959년도에 레슬링 전용 경기장과 헬스장을 갖춘 매머드급 스포츠 센터 건립을 계획했을까. ↑ 동경 아카사카 숙소 입구에서 운동을 한 후 포즈를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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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53]

     늘 말하지만 스승 역도산은 내 인생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의 삶 절반은 스승 거나 다름없다. 스승을 그림자처럼 모셨던 난 스승의 사생활과 성격 그리고 스승이 추구했던 이상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1963년 12월 스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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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54]

     스승 역도산의 야망은 끝이 없었다. 스승은 키워 왔던 꿈을 하나하나씩 실현해 갔다. 그러나 꿈이 하나씩 실현될 때마다 불안과 걱정거리도 비례해 늘어 갔다. "천석꾼에 천 가지 걱정, 만석꾼에 만 가지 걱정"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말이다. ↑ 이 사진을 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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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55]

    1940년 17세 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간 스승은 온갖 억압과 차별을 겪었다. 나도 일본에 처음 갔을 때 그런 설움을 겪었는데 어린 나이에 일본에 간 스승은 오죽했겠는가. 문제는 그런 차별을 당해도 꾸욱 참고 견디면 되는데 스승은 그러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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