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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0]

    9월초였다. 8월말 도쿄에서 경기를 끝낸 후 10여일 휴식기가 있던 때였다. 체육관에서 훈련중이었는데 스승이 나를 불렀다. "오로키 긴타로, 오늘 밤 나랑 술 한잔 하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깜짝 놀랐다. 스승은 "오늘은 아무도 부르지 않아, 너 하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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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1]

    스승으로부터 "미국서 챔피언 벨트를 따와"라는 특명을 받은 후 그날 저녁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 스스로가 내가 세계챔피언에 도전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찬다고 생각하니 흥분되고 설레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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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2]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라는 말이 있다. 수년간 고생 끝에 스타가 된 나를 미국에 가서 실감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일본인들은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그들은 사인을 받으면서 박치기 모션을 취하는 등 다정함을 보였다.   한 일본인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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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3]

    1963년 9월 세계챔피언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 땅을 밟았을 때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이 이춘성씨였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구 목화웨딩홀 회장인 그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나를 만난 것을 대단히 반기며 놀라워했다. ↑ 난 미국서 멸시와 차별를 받던 한국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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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4]

    미국에서 한국과 일본인은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였지만 프로레슬링 응원에서만큼은 하나였다. 내가 경기를 하는 날이면 한국과 일본 교포들이 함께 모여 응원에 열을 올렸다. 심지어 중국인들까지 가세했다. 일본·중국인들에게는 내가 한국인을 떠나 동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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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5]

    경기 시간은 오후 6시 LA시립경기장이었다. 눈을 뜨니 오전 8시경이었다. 전날 리셉션 장소에서 상대 선수들로부터 돌인지 아닌지 확인시켜 주기 위해 머리를 워낙 많이 맞아 경기를 잘 펼칠지 걱정이 됐다. 머리가 띵하니 헛구역질까지 났다. 그 순간 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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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6]

    프로레슬링·축구·야구 할 것 없이 스포츠에는 늘 홈 링과 홈 그라운드 이점이 있다. 우리 상대는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을 휘어잡고 있던 랩 마스터 콤비였다. 그들 역시 홈 링의 이점을 안고 링에 올랐다. ↑ 1967년 WWA(세계레슬링협회) 제23대 세계 헤비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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