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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63]

    1959년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도쿄 니혼바시 닌교초에 위치한 역도산도장에 덩치 좋은 한 사내가 스승 역도산과 함께 나타났다. 시커먼 피부에 호리호리했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스승이 그를 프로레슬링 선수로 스카웃하기 위해 데려온 것처럼 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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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64]

    난 처음 장훈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지 몰랐다. 스타일과 외모로 봐선 한국인이 아닌가 생각은 했지만 일본 문화에 더 익숙한 것 같아 일본인 야구 선수로 생각했다.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우연찮게 전해 들었다. 나도 레슬링 선수로 점차 이름이 알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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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65]

    장훈이 프로야구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드높였다면 난 프로레슬링으로 한국인의 기개를 세웠다. 1960년대 재일 한국인이 일본에서 당했던 설움과 차별은 당하지 않았으면 모른다. 난 장훈이 프로경기에 출전하는 날이면 역도산도장 문하생들과 어울려 경기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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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66]

    사람마다 자신이 평생 잊지 못하는 해가 있을게다. 나에게는 1963년이 잊을 수 없는 해다. 그중에도 한 해가 저무는 12월. 12월에 난 세계 챔피언이 됐고, 스승 역도산은 세상을 떴다. 지금도 스승만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그것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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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67]

    말쑥한 양복 차림의 한국인들이 다녀가면 스승 역도산은 오오노 반쿠보와 따로 만났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정치인이었던 오오노는 스승의 레슬링 후원자였다.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달여 만에 그 내용을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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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68]

    스승 역도산은 한국을 방문하기 전 한국 정부에 일종의 옵션을 걸었다. 판문점을 간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위험성을 이유로 애초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스승은 반드시 판문점을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국 정부는 스승의 뜻이 완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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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69]

    스승은 레슬링을 통해서 남북 통일에 기여하고 싶어했다. 실제로 스승은 레슬링을 통해 남북이 하나되는 프로젝트를 구상중이었다. 스승은 가끔 내게 "남과 북이 하나되고 화해를 하기 위해 남북한에서 레슬링을 개최하면 어때?"라고 의향을 묻기도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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