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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1]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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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으로부터 "미국서 챔피언 벨트를 따와"라는 특명을 받은 후 그날 저녁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 스스로가 내가 세계챔피언에 도전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찬다고 생각하니 흥분되고 설레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혈혈단신 밀항 한 것도 세계챔피언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일본서 온갖 차별과 역경을 이겨 낸 것이다. 마침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행에 오른다는 것이 나를 흥분되게 했다.
 
스승에게 야단 맞고, 얻어 터지고, 머리가 아파 움직일 수 없었지만 박치기를 해댔고, 보이지 않는 차별속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워야 했던 가슴 아픈 추억들이 눈녹듯 사라졌다. 난 미국 가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난 세계챔피언 벨트를 따고 난 뒤 고향 땅을 밟겠다고 결심했고 다짐했다.
 
그 다음날 리키팰리스 스포츠 센터로 갔다. 내가 챔피언 벨트를 따기 위해 스승의 특명을 받고 미국으로 간 다는 소식이 체육관에도 쫙 퍼졌다. 자이언트 바바와 안토니오 이노키·선배 요시무라 등은 "반드시 세계 챔피언이 돼라"고 격려해 줬다. 스승의 많은 제자중 내가 가장 먼저 세계챔피언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스승은 그날 보지 못했고 난 훈련에 더욱 매진했다. 며칠후 내가 세계챔피언에 도전한다는 기사가 도쿄스포츠신문에 실렸다. 역도산 제자중에서 한명의 세계챔피언이 탄생할 지 주목된다는 기사였다. 난 스승의 배려로 거의 10여일간 경기를 하지 않고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면서 미국행 준비를 했다.
 
드디어 미국으로 출발하는 날이었다. 난 스승에게 인사하고 갔다. 스승은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며 격려해줬다. 그러면서 스승은 "투혼을 가슴 속에 품고 경기에 임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스승은 내 손에 달러를 쥐어주면서 "이 돈으로 술 마시고 여자집이나 가지말고 미국가서 고기나 실컷 먹어라"고 했다.
 
난 스승이 그런 말을 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반드시 벨트를 따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스승은 "벨트를 따지 못하면 돌아오지마, 알겠어"라며 나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난 그날따라 스승의 눈빛이 허전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웬지 모르게 스승과 영영 작별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체육관 동료들과도 인사를 한 뒤 체육관을 나섰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은 난생 처음가는 것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일본에서도 혼자 성공했는데 미국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마침내 미국 LA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분주했다. 마치 내가 처음 도쿄역에 도착했을 때 분주했던 일본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미스터 모터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인 모터씨는 가족들이 이민을 와 미국에서 살았다. 모터는 스승보다 나이가 서너살 위였고, 스승의 미국행도 주선했던 인물이다.
 
모터씨는 레슬러와 프로모터로서도 활동을 했다. 미국 선수들을 이끌고 일본을 방문한 적도 있어 나와도 구면이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이한 뒤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집이 내가 챔피언벨트를 따기 전 까지 머물러 있을 숙소였다.
 
모터는 내가 훈련할 장소와 경기장을 안내했다. 훈련장은 리키팰리스스포츠센터보다 규모나 시설면에서 낙후했지만 훈련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난 모터씨 집에 여장을 푼 후 LA거리를 한바퀴 돌았다. 그런데 거리를 지나가다 일본인들이 나를 알아보았다.

일본선 나름대로 스타가 돼 알아보는 팬이 많지만 이억 만리 미국에서 나를 알아보는 팬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어떤 팬은 무릎을 꿇고 울기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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