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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25]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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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히구치는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 공이 울리자마자 비꼬듯 웃으며 머리부터 대고 마구 덤벼들었다. 성난 코뿔소처럼 나를 들이박아 불구자로 만들 태세였다. 그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수학 공식처럼 그토록 달달 외웠던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차고 꺾고 때리는 것에 대해 내가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신바람 공격을 계속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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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일 나에게 데뷔전 폴패를 안긴 조 히구치(오른쪽)를 30여 년 만에 만났다.
그가 몸이 불편한 나를 안타까워하며 장갑을 껴 주고 있다.

 

 

무작정 공격만 당할 수 없었다. 나의 특기인 꺾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막상 링에 올라가서 상대방과 붙고 보니 연습 때처럼 기술이 통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딱딱한 느낌을 주었다. 보통 사람과는 육체의 질감이 다르다고 할까? 아무리 차고 때려도 그는 묘하게 피해 다녔다. 경기는 그가 일방적으로 이끌어 갔다.

 

그는 적당히 반칙도 했다. 펀치를 관자놀이 위에 날렸다. 심판이 그 펀치에 대해 주의를 주자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손을 핀 상태에서 가격했다고 어필했다.

 

그러나 경기에선 반드시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일방적 공격을 당하다가 오기가 발동, 이판사판으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헤드록을 걸자 그는 고통스러워했다. 링으로 밀어 로프 반동으로 튕겨져 나오는 그에게 킥과 당수를 잇따라 날렸다.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이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난 첫 경험에 만족해야만 했다. 노련미는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고통스러워 하며 비틀거렸던 것은 고도의 작전이었다. 적당한 기회를 봐서 나를 한 방에 보내겠다는 작전에서 나온 제스처였던 것이다. 난 그의 술수에 말려들어 곧바로 보디슬램을 당했다. 그는 나를 번쩍 하늘로 들어올린 뒤 매트 위로 내동댕이쳤다. 보디슬램에 거의 정신을 잃었다. 그의 묵직한 몸이 나를 덮쳤다.

 

"원, 투, 스리??" 심판이 매트를 세 번 두들겼지만 어깨 반동도 하지 못했다. 폴패였다.

 

경기를 끝낸 뒤 대기실에 대자로 뻗은 뒤 미동도 않은 채 천장만을 응시했다. 허리.머리.몸통이 후끈후끈 쑤셨다. 하지만 아픈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 것에 대한 자책감과 함께 앞으로 순탄하게 레슬링 선수 생활를 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토록 오랫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데도 맥없이 무너졌으니 말이다. 조 히구치는 나의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레슬러다. 그런 그와 근 30여 년 만에 만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난 지난 2월 말~3월 초 일본을 방문했다. 그때 일본 레슬링 최고 단체인 `노아(NOAH)`를 방문했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조 히구치였다. 그는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존한 나를 보고 "오오키 긴타로, 걸어와야지 휠체어가 뭐야"라며 인사말 대신 호통으로 맞이했다. 살아 생전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았던 그와는 이렇게 재회했다. 그는 "오오키, 건강해야 돼"라며 나를 무척 걱정했다.

 

`오오키 긴타로(大木金太郎)??`

 

그러고 보니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나의 일본 이름은 오오키 긴타로다. 오오키란 `크다`란 의미다. 긴타로는 일본의 전설적 장사를 칭한다. 옛날 긴타로란 장사는 곰 등 사나운 짐승들과 싸워도 한 손으로 끝냈다고 할 만큼 힘이 장사였다.

 

이 이름은 스승이 지어 줬다. 첫 경기 이후 난 `김일`이 아닌 `오오키 긴타로`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일본에서 오오키 긴타로로 통했다.

 

조 히구치가 나의 일본 이름을 부르니 오오키 긴타로란 이름이 새삼스럽게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비록 첫 경기에서 졌지만 나는 일본의 전설적 레슬러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진짜 긴타로처럼.

 

 

<계속>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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