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동네에
전화기가 한 대 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 회관에 한대가 있었다.
그리고 전화가 오면 마이크로 안내 방송을 하였다.
그래서 상관이 없지만 누구네 집에 어디서 전화가 왔다는 것을 다 알수 가 있었다.
그러면 들녁에서 또는 건장에서 해우 널다
털털 털고 전화 받으러 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외지로 나간 누나나 형이 없었던 우리집은 멀리서 올 전화도 없었다.
조무래기 시절 우리가 만들어 놀았던 전화기도 있었다.
대나무를 잘라 통을 만들거나 깡통을 잘라서 한 쪽을 트고
거기에 구멍을 뚫어 두개를 발장실이나 철사를 연결해서
바로 앞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낄낄거리면서
전화질을 하고 놀기도 했다.
내게 제일 깊은 추억으로 남은 것은
동각 숙직실에서 동네 경~형하고
전신국에서 일하는 교환아가씨의 고운 목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형이 전화국에서 일하는 아가씨를 좋아했던거 같다.
그래 그 형이 시키면 나는 검정전화기의 하얀 버튼을 누르고
띠리릭 띠리릭 거리면서 전화기에 달린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면 저쪽에서 그렇게 고운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게 그리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자라면서 중학교를 가게되고 그 이쁜 목소리의
전화국의 아가씨는 얼마나 이쁠가 궁금하기도 했다.
하루는 오일 장이 열리는 데 용동으로 가는 길에 전화국을 지나 칠 수 가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전화국아가씨는 참 단정해 보였다.
당연히 직원이 바뀌었겠지만
어렸을 적 기억이 있기에 뒷모습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 교환아가씨의 앞 모습이 이뻣을 것이란 짐작을 해보았다.
이제,
이 곳 지구의 다른 반대편에서 산에 올라가 밤에 전화를 하면
거금도의 고향 앞바다 갱본에서 엄니는 한 낮에 전화를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얼굴을 화면으로 보며 통화를 할 수 있게 되니
세상 좋아졌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그 동안
그 교환 아가씨의 목소리는 여전할 까?
전화기가 한 대 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 회관에 한대가 있었다.
그리고 전화가 오면 마이크로 안내 방송을 하였다.
그래서 상관이 없지만 누구네 집에 어디서 전화가 왔다는 것을 다 알수 가 있었다.
그러면 들녁에서 또는 건장에서 해우 널다
털털 털고 전화 받으러 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외지로 나간 누나나 형이 없었던 우리집은 멀리서 올 전화도 없었다.
조무래기 시절 우리가 만들어 놀았던 전화기도 있었다.
대나무를 잘라 통을 만들거나 깡통을 잘라서 한 쪽을 트고
거기에 구멍을 뚫어 두개를 발장실이나 철사를 연결해서
바로 앞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낄낄거리면서
전화질을 하고 놀기도 했다.
내게 제일 깊은 추억으로 남은 것은
동각 숙직실에서 동네 경~형하고
전신국에서 일하는 교환아가씨의 고운 목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형이 전화국에서 일하는 아가씨를 좋아했던거 같다.
그래 그 형이 시키면 나는 검정전화기의 하얀 버튼을 누르고
띠리릭 띠리릭 거리면서 전화기에 달린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면 저쪽에서 그렇게 고운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게 그리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자라면서 중학교를 가게되고 그 이쁜 목소리의
전화국의 아가씨는 얼마나 이쁠가 궁금하기도 했다.
하루는 오일 장이 열리는 데 용동으로 가는 길에 전화국을 지나 칠 수 가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전화국아가씨는 참 단정해 보였다.
당연히 직원이 바뀌었겠지만
어렸을 적 기억이 있기에 뒷모습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 교환아가씨의 앞 모습이 이뻣을 것이란 짐작을 해보았다.
이제,
이 곳 지구의 다른 반대편에서 산에 올라가 밤에 전화를 하면
거금도의 고향 앞바다 갱본에서 엄니는 한 낮에 전화를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얼굴을 화면으로 보며 통화를 할 수 있게 되니
세상 좋아졌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그 동안
그 교환 아가씨의 목소리는 여전할 까?
참 오랜만에 들어본 말들이네요
힘들었던 시절이지만
지금은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이렇게 웃게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