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 전동호님께서 무등일보에 기고한 "거금도 일기" 입니다.
바다에 떠있는 거북등 형세에 큰 금맥이 뻗어 있다 하여 거금도(居金島)라 한다.
해발 592m의 적대봉(績臺峰)과 봉수대(烽燧臺), 418m의 용두봉이 있고 그 사이에
옛 절이도(折爾島) 목장성 30리 돌담이 크게 내달리는 말들을 몰아오는 듯 남아있다.
전망 좋은 해안도로와 산행 길 또한 오르내리기 어렵지 않게 연결되어 있어
해양산행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국도 27호선 기점인 오천리 서촌마을 초입에서 마당목재를 거쳐 정상에 올라서니
서쪽에 장흥 천관산과 완도바다, 동으로 여수 한려해상, 남으로 저마다 사연 있을
올망졸망 섬들과 멀리 거문도, 북으로는 거금대교와 해무 속 팔영산이 들어온다.
날씨 좋으면 제주도가 보인다 하니 바로 앞이 그곳 가는 바다길이다.
아직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른 봄부터 변화무쌍 할 철쭉, 개나리, 억세와
후박나무가 넘쳐나고 붉게 물들 마삭 잎과 넝쿨 잎도 곳곳이다.
북동쪽 동정마을에서 오르면 바람에 잘려진 바위판들이 가지런한 길을 만들어 놓고
독수리 모양 바위가 한 팔에 안겨 기념사진 찍기 좋게 자리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연밥에 김치찌개, 김을 얹어 출출한 배를 채우고 마당목재로 내려와
파성재에 이르니 애기동백 홀로 꽃망울을 활짝 피어 올려 이른 벌님 안아 모으는 환희에
감사하면서 뻐근해진 다리 쉴세없이 용두봉으로 향한다.
잘 난 아스팔트길 옆에 두고 푹신한 솔 길을 택했지만 다닌 지 오래라 이리저리 찔리고 긁히다 못해
그 길로 다시 나와 쭉 걸어 등성이에 다다르니 송광암이 자리하고 있다.
고개 숙여 약수 한바가지 질러 들이킨 후 바닥난 물병을 채우고 경내에 들어서니
수백 년 느티나무가 수호신마냥 비탈을 바치고 서있다.
눈이 게으르다고 한발 두발에 벌써 용머리 정상이다.
큰 숨 몰아 한껏 기운을 충전한 후 하산 길에 들어서니 이전과는 달리
바위를 건너뛰고 밧줄에 의지해야 하는 양 옆이 훵 뚫린 능선길이다.
사방 천지 싱싱한 자연을 발아래 두고서도 문명의 이기를 위한 태양광 시설과 채석장을 멀리
내려 보면서 영화 속 우주기지를 씁쓸히 연상하기도 했다.
길고 긴 이정표 속 2.0㎞아래 평지마을에 도착하니 70년대 온 국민의 우상이었던
박치기 왕 김일 선수가 태어난 곳으로 큰 정자나무가 긴 세월 옛 얘기를 하고 있다.
봉수대는 조선 세종때 전국 5거(五炬)를 기점으로 700여 주봉에 완비하였다.
밤에는 횃불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를 올려 외적의 침입 등 긴급한 상황을 전달했던 곳이다.
대부분 사라지고 원형이 남아있는 곳 중에서도 둘레 34m인 이곳이 으뜸이다.
칠우회원이 기증한 ‘적대봉’ 표석을 배경으로 잠시 찰칵하면서도
문화유산을 아끼고 가꾸어 나가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
남쪽 앞바다에 물이 들 때면 몽돌 구르는 소리가 명곡이 되고 해안 바위 벤치들이
파도 색깔도 다르게 하며 솔밭을 두른 익금백사장의 일출도 일품이다.
남서쪽 바다너머에는 섬 안에 섬 연홍도(連洪島)가 지척이다.
거금도의 기(氣)가 큰물로 이어졌다 하여 마도(馬島)에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으며
전국 유일의 섬 미술관이 있는 곳이다. 바다를 앞에 두고 야트막히 자리한 연홍분교 터를
2006년에 팬션 겸 갤러리 색으로 입혔다.
유채꽃보다 더 진한 갓꽃이 만발할 날을 기다려 본다.
거금도는 제주, 거제 다음의 큰 섬으로 녹동에서 40여분 뱃길이었으나
2009년에 소록대교 1,160m와 2011년에 거금대교 2,028m가 개통되면서 찻길로 연결되었다.
사철 음이온 청정 바다 속 해풍이 찰진 황토와 굴, 꼬막 등 조개껍데기 패화석 비료를 만나
명품 마늘과 양파를 만들어 내고 미역, 톳, 다시마 등 바다목장의 명성이 소득으로 이어져
5,000여명이 거주하는 부자 섬이 되었다.
그래서 거금도가 있는 고흥을 ‘지붕 없는 미술관’이요, ‘8품 9미 10경’의 고장이라 한다.
간척지 쌀 해미, 감기와 피부미용에 탁월한 유자, 여성의 과일 석류, 삼치와 전어 등 건강,
미용에 맛이 더한 신비를 간직한 땅이기 때문이다.
이제 ‘섬 마늘’ 같은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연홍도 건너 금당8경도 큰 볼거리이니 소록도를 묶어
거금도 ‘산&해양 트래킹’ 체험상품으로 개발해 볼만하다.
설 연휴 마지막 날, 훈풍이 함께한 거금도 산행과 저녁매운탕에 반주(飯酒)가 더 해진
녹동항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무게를 뒤로하게 한 하루였다.
이 시간들 지나면 온 몸으로 눈뜨는 청춘 신록을 맞이할 때다.
‘헤르만 헤세’는 ‘봄이 하는 말’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