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그랬는지 홍리아그들하고 늘 앙숙이였다.
월포 아그들은 싸가지 없게도 홍리 어른들까지도 시퍼 봤다.
학교 파하고 집에 오는 길엔 으레 티격 태격시비가 붙곤 했는데
우리 월포아그들은 산중턱에서 내려다보고
두손으로 입을모우며 젖먹던 힘을 다해 소리소리 질렀다.
"홍리 꼴짝 산모구때들아 ~!"
주먹을 쭈ㅡ욱 훝어올리며 "이놈 묵고 죽어라~~"
홍리 아그들 바로 응징에 들어간다
"월포 뻘등 갈딱모구 때들아 낼 느그는 뒤져!~"
하지만 참새가 죽어도 짹!인데 어디 월포 아그들이 눈이나 깜짝할것인가?
우리 친구 영현이는 그야말로 왕대장으로 진짜로 깡이쎘다.
그 덕에 우리는 기를 펴고 학교에 잘 다닐수 있었다.
월포 아그들은 달리기도 참 잘했다. 운동회때 부락대항 릴레이는 맡아놓고 1등을했다.
월순이 언니는 날렵한 몸에 정말 제트기처럼 빨라서 금산면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운동회 때는 달리기 잘하는 아그들이 우리 들의 우상이였다.
몇년 윗 선배 청년들도 배구를 잘했던 것같다.
그것도 부락별로 시합을 했는데 행여 지는 날엔 기어코 사단이났다.
쓸데없이 다른 동네랑 시비를 걸어 학교 유리창을 몇개씩 작살 내놓고서야 끝이 나곤 했다.
어쨌거나 그 시절엔 월포 멀마들은 참 용감 하기도 했고 쓸데 없는 객기도 많이 부렸다.
생각해보면 월포하고 홍리사이엔 혼인한 사람들이 없다(아주 옛날말고는)
세월이 흘러 홍리 가이네들이 어여쁜 처녀들이 되어서
월포 달갯재를 넘나 들때면 나뭇짐을 쉬던 월포 총각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한겨울이 되면 홍리 사람들은 바구니와 조락을 지고 줄줄히 피난민들 처럼 달갯재를 넘어왔다.
월포 사람들 조락에는 까만 김이 가득했는데 홍리 사람들 조락에는 시퍼런 메생이만 가득했다.
지금은 홍리 사람들이 그리도 힘겹게 넘나들던 달갯재몰랑도
포크레인에 찍혀 문드러지고 밋밋한 보통 신작로가 됐다
그 밑에 늘 서슬이 시퍼랬던 수진네 똥까끔도 기세가 꺽인지 오래다.
돌이켜 생각해보자니 내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묻혀있는 자갈 섞힌 학교길이 그립다.
아침이면 학교가는길에 굵은 감재를 숨겨 놨던 귀뚱지 나무도....
똥바구도.. 맹감 잎삭으로 물 바쳐서 마셨던 자그마한 산굴도....
사투리를 어찌 그리도 잘 살리셔서 쓰시는지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데요.
학교에서 타오는 건빵을 오룡동으로 올라가는 초입길에서 머스마들이 뺏어먹기도 하고 그랬죠. ㅎㅎ
마을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조금씩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추억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도시인들에겐 도저히 납득 안되는 그 추억들을요.
오늘은 이 글을 읽고 엄청나지만 잔잔히 파고드는 감동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