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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6 14:45

김일 선생님 별세

조회 수 5871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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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왕' 김일씨, 지병으로 별세
[연합뉴스] 2006년 10월 26일(목) 오후 12:22   가| 이메일| 프린트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1960∼70년대 국내 프로레슬링계를 풍미했던 `박치기 왕' 김일 씨가 26일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주치의인 을지병원 순환기내과 최재웅 교수는 "평소 당뇨합병증과 고혈압, 심부전 등의 지병과 싸워 온 김씨가 이날 낮 12시17분 사망했다"고 밝혔다.

최종 사망원인은 만성신부전증과 신장혈관 이상으로 인한 심장마비.

하루 전날 급격히 혈압이 낮아지면서 의식을 잃은 김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뒤 심폐소생술과 혈압을 높이는 치료 등을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뒀으며 아들 수안(56)씨와 첫째 딸 애자(61)씨, 둘째 딸 순희(59)씨 등 친인척, 제자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회장 등 지인 30여명이 임종을 지켜봤다.

이왕표 프로레슬링연맹 회장은 "선생님은 얼마 전만 해도 출판기념회를 열 것이라며 좋아하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게 돼 너무 안타깝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지난 1957년 역도산체육관에 입문하며 레슬링을 시작한 김씨는 1963년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당시 프로레슬링계를 주름잡았던 국민적 영웅.

특히 특유의 박치기 기술로 상대를 제압할 때면 전 국민이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면서 당시 시름을 덜어내기도 했다.

고(故) 장영철, 천규덕 등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와 함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1970년대 중반 현역에서 물러난 김씨는 이후 일본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였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봐야 했고 이후 경기 후유증으로 지병까지 생기면서 외로운 투병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다 김씨의 팬이었던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의 권유로 1994년 1월 귀국해 10여년간 을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며 한 때 건강이 호전돼 후배 양성과 프로레슬링 재건사업 등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난해 결장 제거수술 이후 인공항문에 의지해야 했다.

최근에는 만성신부전증까지 겹쳐 신장투석을 받는 등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했고 결국 이날 세상을 떠났다.

한편 김씨의 빈소는 을지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특실에 마련됐고 28일 오후 경기도 벽제에서 화장을 한 뒤 유골은 고향 전남에 안치될 예정이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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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행부 2006.10.26 15:0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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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 만지는아줌마 2006.10.26 22:37
    도자기를 만드는 시골주부입니다 60-70년대를 풍미하던 프로레스링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김일선생님을 묘사해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선생님께 바치며....






    흙 만지는아줌마 http://cafe.daum.net/jangseon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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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맘 2006.10.26 2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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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2006.10.26 22:43
    '박치기왕' 김일은 영원한 우상

    [한국일보] 2006년 10월 26일(목) 오후 06:30   가| 이메일| 프린트


    ■ '박치기왕' 의 일대기
    머리 하나 더 달린 것 같은 큰 키에 야비한 반칙도 불사하던 일본의 레슬러들. 반면 이리저리 고통스럽게 내던져지던 왜소한 체구의 한국 선수들. 흑백 TV 앞에 모여 앉아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던 국민들에게 ‘박치기 한 방’은 절망 속의 희망이자 짜릿한 쾌락이었다.

    # '국민스포츠'의 영웅… 말년엔 장기투병
    험상궂은 거구의 레슬러들을 추풍낙엽처럼 자빠뜨렸던 김일의 박치기. 고단한 삶이 지배하던 1960~70년대 ‘박치기 왕’ 김일이 등장하는 프로레슬링은 ‘국민 스포츠’였다.

    김일은 1929년 전남 고흥의 한 섬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로선 큰 키였던 185㎝의 건장한 체구를 갖춘 김일은 지역의 씨름대회를 석권하며 이름을 알렸다. 여순반란 사건과 한국전쟁 때 좌익으로 몰려 고생했던 김일은 56년 여수에서 선원들을 통해 얻은 일본 잡지에서 역도산의 기사를 읽고 난 뒤 무작정 일본으로 향했다.

    김일은 이듬해인 57년 도쿄 역도산체육관에 문하생 1기로 들어가게 됐고, 여기서 ‘필살기’인 박치기 기술을 익혔다. 함경도 출신의 역도산은 일찍이 평양 박치기의 위력을 절감하고, 김일에게 “너는 조선 사람이니 박치기 기술을 익히라”고 명령했다.

    오오키 긴타로라는 일본 이름으로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김일은 탄탄대로를 밟으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63년 12월 역도산이 칼에 맞던 날 공교롭게도 김일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생애 처음으로 세계프로레슬링협회(WWA) 챔피언에 올랐다. 경기에서 지지 않는 것만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여긴 김일은 운동에 전념, 72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인터내셔날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프로레슬링계를 평정했다. 30여년의 현역 생활 동안 3,000여 차례 경기를 치른 김일은 무려 20차례나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따냈다. 라이벌인 안토니오 이노키, 압둘라 부처 등과의 경기는 최고의 명승부로 기억된다.

    야구광이었던 김일은 일본 프로야구의 강타자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의 ‘외다리 타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박치기 자세를 완성했다. 최근 방송에 출연한 김일은 “왕정치가 현역 시절 발을 들고 타격하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 체중을 실어야 하는구나’라고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후 머리를 뒤로 젖힌 채 한쪽 발을 들어 상대방에게 체중을 실어 ‘박치기’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프로레슬링의 전설로 군림했던 김일이었지만 그의 말년은 사업 실패와 투병으로 얼룩졌다. 80년대 중반 손을 댔던 활어 수출 사업 등이 잇따라 실패한데다 박치기 후유증과 노환, 당뇨병 등에 시달렸다.

    다행히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의 도움으로 지난 94년부터 13년째 무료 입원 치료를 받아왔지만 고혈압, 하지 부종, 신부전증 등 각종 질환이 겹친 데다 최근엔 빈혈증세까지 보이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김일은 지난 2월 “레슬링은 쇼”라는 발언으로 원수처럼 갈라섰던 ‘백드롭의 명수’ 장영철과 극적으로 만나 화해했고, 3월엔 일본에 건너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 야구 대표팀을 격려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정부는 김일에게 지난 94년 국민훈장 석류장과 200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했다.

    ▲ 빈소 이모저모
    ○…김일이 26일 낮 지병으로 별세하자 그가 입원치료를 받았던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은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아들 수안(56)씨와 딸 애자(61), 순희(59)씨를 비롯해 김씨의 제자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회장 등 프로레슬링 관계자 30여 명은 김씨가 숨질 당시 을지병원 3층 중환자실 앞에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울음을 터뜨렸다. 한편 고인의 수제자인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회장은 스스의 장례식을 원활히 치르기 위해 '장례준비위원장'을 자처하면서도 방문객들을 일일이 격려하고 신경을 써 눈길을 끌었다.

    일본 언론서도 취재 관심
    ○…일본 언론에서도 한때 '박치기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김일씨의 투병 생활에 관심을 나타냈다. 김씨의 상황을 지켜 보기 위해 을지병원을 찾은 일본 일간지 '닛칸 겐다이'의 마사키 다치가와 기자는 "1970년대 초 김일씨는 역도산과 함께 매우 유명한 프로레슬링 선수였다"면서 "일본의 60~70대들은 아직도 그의 근황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마사키 기자에 따르면 김씨는 일본에서 '박치기' 기술로 활약할 당시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는 전설적인 사나이'를 뜻하는 '오오키 긴타로'라는 별명을 가졌었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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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조선 2006.10.26 22:53
    '박치기왕' 김일, 인생 스토리

    [스포츠조선] 2006년 10월 26일(목) 오후 04:03   가| 이메일| 프린트

     언젠가기자는 김일씨에게 "프로레슬링은 잘 짜여진 한 편의 각본대로 진행한다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때 김일씨는 우문현답을 했다. "인생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 아니겠소".

    그랬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김일씨은 국민들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며 그렇게 갔다.

    흑백 TV가 등장한 60년대. 그는 한국 전쟁의 후유증으로 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 국민들의 상처를 씻어주는 '영웅'이었다. 반칙을 일삼는일본의 야비한 레슬러들이나 자이언트 바바와 같은 거구들을 주특기인 박치기로 시원하게 쓰러뜨리는 통쾌한 장면이 흐릿한 흑백화면에 나오면 국민들은통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각고의 노력을 거듭했다.

    1928년 전남 고흥의 섬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소년시절부터 특별했다. 1m80의 건장한 체격에 힘 하나는 타고났다. 씨름대회가 열리는 날이 소를 잡는 동네 잔칫날이었다. 1등은 떼논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16세에 결혼하며 평범한 농삿꾼으로 살아가던 그는 어느날일본 최신잡지에 실린 프로레슬링 세계챔피언 역도산의 기사를 봤다. 험난한 프로레슬러로서의 삶의 시작이었다. 집안 몰래 일본행을 결심한 그는1956년 씨름판에서 모은 돈으로 배삯을 마련한 무작정 일본행 배편에 몸을 실었다. 일본에 도착했지만 서툰 일본어 때문에 불법체류자로 몰렸고1년 동안 유치장 신세를 졌다.

    하지만 김씨는 불굴의 의지로 포기하지 않았다. 형무소 생활 동안 역도산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무수히 보냈다. 우연히 애절한 편지를 받은스승 역도산은 김씨의 신원보증을 서주며 감옥에서 빼냈다. 선수생활은 탄탄대로였다.

    파괴력 있는 박치기 기술로 일본에서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사나이'라는 뜻의 '오오키 긴타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타고난 머리의단단함으로 필살기 박치기롤 장착하고 끝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1963년 미국 LA에서 WWA(세계프로레슬링협회) 태그챔피언에 올랐다. 그 해스승 역도산이 의문사했지만 그는 이를 계기로 더욱 프로레슬링에만 전념했다. 경기에서 지지 않는 것만이 하늘 같은 스승의 은혜에 보은하는 길이라여겼기 때문이다.

    1972년 일본 도쿄에서 인터내셔널 세계헤비급챔피언에 오른 그는 30년간의 현역생활동안 3000여 차례나 시합을 치르며 20차례 세계챔피언타이틀을 획득했다. 정부는 그의 화려한 업적을 기려 1994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 2000년에는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했다.

    1994년 을지병원의 권유로 한국에서 투병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병상에서도 프로레슬링의 사랑을 감추지 않았다. 애제자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협회장과함께 대회에 모습을 드러내며 후배들을 격려하고, 프로레슬링의 부흥에 힘썼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화려한 삶을 마감했다. <류동혁 기자 sfryu@>

    ◇프로필
    ▶향년=77세(1929년생)
    ▶출생지=전남 고흥
    ▶주특기=박치기
    ▶주요경력=일본 도쿄 역도산체육관 문하생 1기(1957년) WWA세계태그챔피언(1963년) 미국 텍사스주 록키마운틴챔피언(1964년) 올아시아태그챔피언(1966년)WWA 제23대 세계헤비급챔피언(1967년) 인터내셔널 세계헤비급챔피언, 인터내셔널 세계헤비급 태그챔피언(1972년) 1994년 국민훈장 석류장(1994년)체육훈장 맹호장(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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