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前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助言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後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車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끝까지 못 읽었습니다. 눈물이 나서…." 이름이 '아빠'라는 한 독자는 이렇게 썼다. 본보 13일자 문화면(A19면)에 실린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을 읽고 동아닷컴에 올린 독자 감상에서다. 그는 "여기는 아침, 직장입니다"라는 단 한 줄로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을 표현했다. 육중한 철모를 눌러 쓴 군인이 무전기에 대고 "여기는 백마고지!" 하고 외치는 것보다 더 긴박한 전장 분위기다. 또 다른 한 아버지는 "대학생 딸의 책상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더니, 이걸 본 딸이 내 가슴에 머리를 묻고 펑펑 울더라"고 했다. 아버지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면서.
▷무엇이 이 땅의 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모든 이들을 울게 하는가. 피로와 일과 직장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라는 머리 셋 달린 용과 싸우는 아버지, 손수 모범을 보이라는 속담에 남몰래 콤플렉스를 느끼는 아버지,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고 날마다 자책하는 그 아버지를…. 이 글에서 아버지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아버지를 둔 사람들은 여태껏 바위인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여린 모습을 발견하고 뒤늦게 가슴이 미어진다.
갈수록 경쟁력만 강조해대는 글로벌 사회, 가족들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고도 '부자 아빠'가 아닌 탓에 울 장소조차 없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우는 시대는 불우한 시대다. 1996년 나온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는 외환위기가 터진 97년을 전후해 불어닥친 명예퇴직 칼바람을 타고, 2000년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는 구조조정의 광풍을 타고 베스트셀러로 떠올랐고 전국을 ‘아버지 신드롬’에 몰아넣었다.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작자 미상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는 세계화의 미명 아래 돈과 능력으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세상을 낮은 음성으로 비판한다. 사람 사는 게 그게 다가 아니잖아. 우리가 잊고있는 게 여기 있잖아 하듯.
▷우리의 아버지들은 지금 외로운 거다. 가부장의 권위가 추락할 때마다, 여성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아버지 신드롬이 불거진다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은 잠시 못들은 척하자.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슬에 스스로를 묶어, 힘들고 지쳐도 내색하지 않고 짐을 나눠 지지도 못한 채 견뎌온 아버지가 아닌가. 겉으론 크나큰 느티나무여서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고 있지만 그의 가슴은 이 순간에도 가을 겨울이다. 오늘만큼은 따뜻한 미소로 그동안 아버지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감사와 위로를전해 보자. 아버지가 있기에 우리가 이만큼 된 것이므로.
[동아일보 2002-09-13 18:27]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김정현의『아버지』는 출간 6개월 만에 1백만 부나 팔려나가는, 단기간에 가장 많은 부수를 판매한 책으로 기록되면서 ‘아버지 신드롬’이란 사회적 현상까지 불러일으켜 온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화제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가정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면서도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로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흔히 말하는 아버지 없는 시대, 부권이 추락하거나 상실되어 버린 시대에 상징적 죽음이 아닌 현실로 닥친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와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중년 남성의 심정을 냉철하면서도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다.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갈등을 그리기보다 급작스러운 죽음의 선고를 서두에 배치한 후 주인공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가정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그 구성원들 간의 엇갈리는 감정의 불균형, 죽음을 숨긴 채 허물어져 가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실망과 기대가 뒤섞이는 가족의 기류가 민감하게 포착되어 있으며, 죽음이 엄습하는 순간마다 나약하고 비굴해지려는 자신과의 싸움, 눈앞에 밟히는 죽음 앞에서 철저히 혼자여야 한다는 외로움이 담담히 서술되어 있어 차라리 슬프게 느껴진다.
독자들은 의사라는 직업임에도 친구를 살릴 수 없어 오히려 죽음을 도와줘야 했던 남 박사의 갈등과 우정, 구수한 입심으로 흐뭇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머금게 하는 포장마차 주인, 그리고 짧은 사랑을 전해준 여인 이소령을 통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수술실로 들어간 후 정수와 남 박사의 마지막 교감, 마지막 가는 길에 마련한 아내에게 바치는 선물과 편지에서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처럼 ?미워도 다시 한번? 류의 고전적 멜로물을 연상시키며 사람의 냄새가 그리운 메마른 가슴에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는, 세상을 새롭게 되돌아볼 수 있도록 만드는 소설이다.
『아버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설이다. 중년 가장들은 절실한 자신의 이야기로, 주부들은 미처 몰랐던 남편의 이야기로, 또 젊은 층은 그 동안 소홀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로.
아버지 / 김정현 지음 문이당 출판
어머니의 마음
글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한 소년이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소매치기를 하다가 결국 소년원에 갇혔다.
소년은 단 한번도 면회를 오지 않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자신을 가둔 사회를 저주하였다.
이런 소년을 지켜보던 한 교도관이 어느 날 새끼 참새 한 마리를 선물하며 말했다. "네가 이 새끼 참새를 어른 참새로 키워 내면 널 석방해 주겠다."
하루라도 빨리 나갈 욕심에 소년은 흔쾌히 승낙을 했지만, 새끼 참새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감방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장난을 막아주어야 했고 춥지 않도록 감싸주어야 했으며, 때론 먹이도 줘야 했다.
그런데 참새는 조금 자란 뒤부터 자꾸 감방의 창살 틈으로 날아가려 했다. 날아가지 못하도록 실로 다리를 묶었더니 참새는 그 실을 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소년이 먹이를 주고 달래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지친 소년이 교도관에게 참새를 그만 풀어 주어야겠다고 말했다.
"저는 계속 키우고 싶은데 참새는 제 마음을 몰라주는군요."
그러자 교도관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자네 어머니의 마음일거야. 다 자라지도 않은 너를 붙잡고 싶지만 너는 줄을 끊고 날아가 버린 거지. 그래서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거야."
소년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네 어머니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계신다. 네가 새끼 참새를 생각하는 것보다 수백 배 말이다. 어머니는 너를 위해서 그 동안 글씨를 배우신 모양이다. 네 석방을 간청하는 탄원서를 손수 쓰셨더구나."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도 없습니다. 그 사랑과 희생의 끈이 우리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어머니의 마음 헤아려 드리기만 해도 효도입니다.
최민식과 조은이 엮어낸 감동적인 사진에세이
삶이 고단하고 힘드신가요? ‘인간의 불행이라는 악성바이러스를 꿋꿋이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항체’가 여기 있습니다. 50년간 인간을 주제로 삶의 진실을 파헤쳐왔던 사진작가 최민식(76)씨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불행'을 껴안는 그의 넉넉한 품이 그려집니다. 최근 시인 조은씨가 최씨와 함께 펴낸 사진집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샘터)는 고단한 삶을 응시하는 두 사람의 영혼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최씨는 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사진으로 담아왔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장사하다 끌려가는 아주머니와 고구마 몇 개 얹어놓고 행상을 벌이는 아이와 어머니, 길가에 지친 몸을 기댄 부자(父子) 등 고단하고 남루한 일상이 연이어집니다. 그 자신 또한 팔리지 않는 사진만 찍느라 줄곧 가난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네들 삶의 진실이 더욱 진하게 그의 사진에 묻어나는지도 모릅니다.
최씨의 카메라가 이처럼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치열하게 움직이며 찍어낸 사진에 시인 조은씨가 간결한 글로 새로운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최씨가 1950년대 후반부터 2004년까지 담아온 여러 서민들의 모습과 느낌에 감동을 더해주었습니다.
그들이 찍고 써 내려간 과거의 불행으로 잠시 되돌아가봅니다. 과거를 보면서 힘겨운 현재를 잠시 위로 받아봅니다. 인생을 담은 노사진작가와 한 중견시인의 질퍽한 감동의 사진에세이를 이제부터 간략하게 소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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