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공중전화기는 거금연도교 너머로 사라지고~ 시끄러운 소리가 많이 들린다.
“응! 그래? ○○동창 ○○가~ 어머. 돈 2백 때문에? ~! 그래서 안준대? 남자친구 ○○랑도 헤어지고? 어머. 그럼 그새 딴 남자랑 사귀는 거야? 진짜 나쁜애다. 응... 응... 그래 암튼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그래..... 그럼 내일 ○○시에 ○○○에서 만나 !
응..... 너나 늦지 말고 점심은 네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로 쏠게~!이정도면 완전히 사생활 폭로 수준이다. 돈 떼먹는 데다가 그새 변심한 친구이야기까지..........
그 정도면 더 이상 자세할 것도 없이 상세한 내용인데 내일 또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을 보면 가히 스토커 수준이다. 대화에 고스란히 동참해서
그들의 내일 스케줄마저 함께 공유해야 하는 어떻게 보면 애교라도 있는 수준이다.
어차피 그들의 대화가 나에겐 그리 직접적인 그런데 상황이 험악한 경우도 종종 있다.
껌을 쫙쫙 씹으면서 “뭣이 어쩐다고...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런 말을 하고 다녀...? 누구라고라? 이놈을 만나면 그냥 확...” 침까지 튀겨가며 소리소리 지르고 바로 옆 사람이 그 어떤 놈과 동일시되며, 급기야는 괜시리 “엉”한사람을 위아래로 노려보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하필 그 시간 그 옆에 앉아있던 사람은 가히 도망치고 싶을 만큼 험악한 분위기가 되어버리는데........!
문명의 이기는 우리에게 편리함과 쾌적함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지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신속함도 안겨 주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했던가 ?
“유비쿼터스”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인간의 편리한 생활은 이제 우리들 생활의 상당 부분을 바꾸어 놓고 있다. 동승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느끼는 세월의 변화는 비단 휴대폰의 경우만은 아니다.
바로 옆 좌석에 앉은 사람까지 함께 들어야(?)만 하는 mp3를 끼고 자신은 남의고충이야 알바 없는듯
노트북을 무릎위에 놓고 손놀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언가를 열심히 치고 있는 이들도 있고 휴대폰에서 보여주는 동영상을 함께즐기며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문득 그 옛날 면사무소나 부둣가 또는 마을 입구에 있었던 빨간색 공중전화가 생각난다.
꼬인 줄을 푸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는가 하면 더러는 색이 벗겨져서 황토빛 녹슨 자국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화기가 있었고 심지어 어떤 특정 번호는 다이얼이 제대로 돌려지지 않아 아예 걸리지도 않는 고장난 전화기도 심심찮게 만나곤 했던 시절 이야기다.
물론 빨간색 공중전화만 해도 ○○씨 전화 받으시오 ! 마을 확성기를 타고 들려오는 이장의 목소리에 논밭에서 일하다 말고 시외전화 요금 올라갈세라 허겁지겁 달려와 서로 나누었던 아름다웠던 시절 ? 몸에 불편이 베어있었던 아니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아들딸들의 목소리마저 신기하게 느껴졌던 그 시절 어르신들에게 공중전화의 불편함을 이야기 하면 한마디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어린? 드는 불편함도 자연스레 감수해야만 했던 그 시절에는 그만의 물씬한 아름다운 정취가 있었다.
언제쯤 전화하면 집에 있을까 ? 어디로 전화하면 통화할 수 있을까 ?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 마음 졸이고 가슴 졸이던 그 시절엔 두근거리는 궁금함과 아슬아슬한 간절함이 있었다.그래서 혹여 어렵게 연결된 탁 풀리면서 아쉽고 서운하고 슬프기까지 했던 시절 ! 그러면서 또 애태우며 머물게 되었고 어쩌다 회식자리에서 젊은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라도 풀어놓게 되면 당장에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아니 ? 어디서 이런 오래되신(늙은) 분이...?
무슨 옛 이야기를 그리도 심각하게 하시나 ?” 옛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우선 그 모임에 참석한 이들의 어림잡은 독특한 특성은 60년대 초 서울에 집 한채 값보다 비싸고 부의 상징으로 치부되었던
백색전화와 빨간 공중전화시대를 거친 우리로써도 어쩔 수 없이 편리한 유혹으로 다가온다.언제 어디서든지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휴대폰이라~!
가히 말 만으로도 황홀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거금도 연도교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 옛날 이곳(금산성치)에서 녹동까지 한선(해우채취선)을 타고 건널라 치면 노를 저어 2시간은 족히 걸렸는데 철선의 등장으로 20여분 남 짓 걸리게 되었고 3분여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찜통 더위도 잊어 버린 듯 선창가에 옹기 종기 모여 앉아 목을 뽑아 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던 질퍽한 우리네 삶 !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다워 보인다 했던가 ? 그러나 지나간 것이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 시대만이 갖고 있었던,
지금의 “유비쿼터스” 시대 아이들? 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그땐 정말 있었다. 삶에 지친 구리빛 피부의 멋진 사내가 양당목(장작) 가득 싫고 콧노래 흥얼거리며 삐~걱 삐~걱 훠이훠이 입천장 데일세라 후후 불며 껍질 벗겨 손주에게 먹여 주던 할머님의 포근한 사랑.....! 식구들과 와상에 앉아 어머님께서 정성스레 쑤어주신 천진 스러움이 그땐 있었다.그리고 남몰래 숨어 거리면서 집 앞을 지나갈 때 긴 머리카락으로 전해져오던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이 가변적이고 역동적이며 순간적인 충동의 시대에............! 아... 도대체... 그들은 어찌 알겠는가 ? 설레이며 기다리던 날의 아스라한 느낌들을 그들은 결코 알 수 없으리라. 그러나 또 어찌하랴~! 나 역시 지금의 이 편안함에 어느 사이 깊숙이 물들어가고 있는 것을......... 어느새 꿈에도 선명히 떠오르는 내 고향 금산의 연도교를 넘어 푸른 바닷빛 아름다운 노을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져 버렸나보다. 정말 그랬나 보다. 또 한명의 소박한 사람이 추억속으로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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