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진 봉수대에 오르면
적대봉 정기 아래
아스라이 푸른 물결 굽이도는데
혈색 잃은 산허리에
어지러운 돌들만이
애처러워 보였다
찢어진 가난을 지고
땀 흘리며 지계지고 오르던
산에는
가시나무 사이로
새색시처럼 수줍은 춘난이
머리 숙이고
싱그러운 봄바람에 마음 흔들리고 있었다
꿈은 있어도 꿈을 펴지 못하고
무정한 세월이 나를 슬프게 하던 날
날개 접은 둥지의 새처럼
날개 펴지 못한 체
적대봉 아래서
하늘이 내려와 맞닿은
쓸쓸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한없이 울었다
논 한 뼘 밭 한때기 없는
척박한 땅에 태어나
친구의 집 모내기 밥 한 그릇을
눈물 나게 탐하던 때의 서러움을
그대는 모르리
가난이 분노가 되고
배움이 한이 되어
50 세월을 달려온 오늘
살만한 집도 얻고
배움에 대한 학위도 얻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서러움을 가르쳐 준 고향이
이토록 그리운 사연은 무엇일까
인생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일까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일까
혹한의 추위가 옷을 벗는
2월이 기우는 창가에 기대어
슬픈 연가를 부르는 이유는
그렇게 더딘 세월이
오늘은
너무 빨리 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