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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동촌(洞村) : 마을이 용두봉(龍頭奉) 동북 골짜기에 위치한다하여 ‘골몰(谷村)’이라 부르다가 1907년에 마을 이름을 洞村(동촌)이라 개칭하였다.
2004.09.27 12:41

남편의 새양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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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남편의 새 양복

                                                                           주  정 안

모처럼 남편과 함께 외출하던 날, 대로변은 휴일의 인파와 차량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고 한 낮의 따가운 햇볕아래 행인들의 옷차림은 시원한 반소매 차림이었다.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백화점 할인매장으로 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옷 한 벌 장만하지 그래.” 그러나 남편의 말이 공치사였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이 남성복 매장에 이르면서 점차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매장 앞에 디스플레이 된 여름양복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옷장에 걸려 있는 양복들 중에서 지난 몇 년 사이에 구입한 것이라야 고작 두 벌이었다. 요즘은 남성복도 철 따라 유행 따라 민감하게 변화하는 데다가 남편은 직업상 많은 사람들과 만나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형편이라 그런 그에게 춘하추동으로 입을 만한 정장이 두 벌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남편과 내가 맞벌이를 하던 시절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나 역시 직장에 다니고 있던 터였으므로 싫거나 좋거나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남자들에게는 옷차림새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므로 각자 알아서 챙기는 식이었다. 게다가 맞벌이로 그런대로 생활에 여유가 있어 옷 한 벌 장만하는 일이 그다지 큰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점차 집에 있는 시간을 많이 갖다보니 필요한대로 이것저것 살 수가 없게 되었다. 남편 역시 옷 한 벌 선뜻 사기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마침내 남편은 탈의실에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시원스레 얇은 감으로 만든 양복이었는데 색상이나 스타일이 그에게 잘 어울렸다. 거울에 여기저기 비춰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어 그 옷을 사자고 채근했지만 남편은 계속 망설이고만 있었다. 결국 집에 오는 길, 옷 가방 대신 그의 손에 들려져 있었던 것은 커다란 수박이었다.
그로 말하자면 매우 알뜰한 사람이다. 해진 양말 한 쪽이라도 그냥 버리는 법이 없고, 집안 정돈하면서 내다 버린 헌 옷가지랑 잡다한 물건들을 다시 가져올 정도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일보다 정돈하는 데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쓸모 없는 잡동사니들은 치워버려야 마음이 놓이는 지라 때때로 남편과 언쟁이 벌어지곤 하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물건까지 내다버리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는 십 년을 훨씬 넘긴 식탁이며 가스레인지, 장롱 그리고 묵은 옷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마치 귀중한 골동품인 양 당당하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당당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는가보다.
그 후 아침이면 옷을 고르는 일이 남편에게는 더욱 어려운 듯 했다. 왠지 집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예전보다 활기가 없어 보이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 주일을 보내고 나서 우리는 다시 집을 나섰다. 그리고 파란 여름양복 한 벌을 장만하게 되었다.
요즘 남편은 삼일 내내 그 옷을 입고 다닌다. 셔츠나 넥타이를 바꾸어 맞춰가면서 말이다. 별 말은 없지만 무척이나 흐뭇한 모양이다. 요즘 들어 그의 모습은 예전과는 달리 사뭇 깔끔하다. 옷매무새에 신경을 쓰는 탓이다. 사십대의 뒤늦은 나이에나마 자신의 차림새에 관심을 갖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제 나 역시 자신의 욕구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지금처럼 그렇게 늘 젊고 활기차게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당부하면서 나는 출근길의 남편을 배웅한다.

                                                                   신세계 사외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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