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eopletour.net/罪 (한하운)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에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
출처 : 여행을 만드는 사람들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에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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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드러진 겉 모습만 보고 그들의 심성과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아픔이나 슬픔 같은 것들은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손가락질하는 것이 우리네 세상이다. 나도 소록도를 다녀오기 전 까지는 그랬다. 그럴 만한 자격도 없으면서 그들의 겉 모습만을 보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의 인간들 중에 하나였다. ▶ 소록도로 들어가는 이유... 전라도 길의 끄트머리인 녹동항에서 배로 불과 5분밖에 안걸리는 섬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소록도는... 가서는 안되는 섬...갈 수 없는 섬이라고만 생각했다. 그저 상상으로만 천상의 섬이라 불리는 그 섬의 모습을 그려야 될 줄 알았다. 아는 선배 결혼식에 참석 후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는 누나가 소록도에 가보았냐고 물었다. 갈 수 없는 섬이라고만 생각했었고 가면 나병이라도 전염이라도 되는 양 무서운 섬 인줄로만 생각했기에 가보지 못했다고 했더니 섬의 아름다움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기회가 닿으면 꼭 가보라고 하였다. 결코 후회는 하지 않을 거라 하면서....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소록도를 찾을 기회가 생겼다. 섬에 대한 아름다움이 입소문으로 돌면서 잘 아는 선배가 함께 가자고 한 것이었다. 언젠가는 가보고 싶었던 터라 흔쾌히 승낙을 했고 출발하기 앞서 소록도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 보았다. 그 덕분이었는지 한하운이라는 나병 시인의 존재와 한센병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그 아픔에 따른 눈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고 다행스럽게도 가벼운 마음이 아닌 약간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다. ▶ 소록도로 가는 길....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 나환자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천부 인권과 의식주까지 박탈당하고 자신을 박해하던 인간세상이라는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주어진 마지막 길, 오직 하나밖에 없는 길 소록도로 울면서 갔다. 지금 소록도는 한하운이 그렇게도 멀게 갔던 소록도 길이 아니다. 배를 기다리는 시간은 15분이면 족했고 소록도까지 가는데는 5분이면 족하다. 떠나나 싶더니 도착하는 섬, 육지와 불과 600여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섬.... 섬은 쉽게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울며 가지 않는 섬이다. 배 안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기대감에 찬 모습만 가득하다. 벗어나기 위함이 아닌 세상으로 함께 하려는 기대에 찬 웃음이... 전라도 길은 많은 볼 것들을 제공한다. 막힘 없이 뻗어 있는 농촌의 풍성한 들녘, 하늘빛과 땅빛의 아름다운 조화, 포근히 마을을 감싸 안는 듯한 산줄기.. 이러한 모습들은 고속도로를 빠져나가게 되면 바로 국도변에 줄지어 나타난다. 그래서 난 전라도 여행길을 아주 좋아한다. 그런 풍광에 젖은 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차로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전라도 고흥의 녹동항이다. 여느 어촌 항구와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배들로 가득 차 있는 항구는 짐을 싣고 내리느라 또는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느라 분주했다. 우선 먼길을 달려오느라 늦어버린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 다음 소록도행 배를 타기 위해서 항구로 향했다. 혼잡한 항구에는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소록도라는 천상의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도 인파에 묻혀 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혼잡한 교통을 정리하러 나온 경찰관들이 약수까지 떠다 놓고 안내활동을 해 소록도 초입을 짜증이 아닌 기분 좋은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해주었다. 기다림은 오래되지 않는다. 15분에 한 대 꼴로 배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금방 배에 오를 수 있다. 이제 소록도로 들어간다!! ▶ 먼길을 달려 도착한 소록도... 내가 아는 소록도... 작은 사슴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섬, 여의도의 1.5배 크기인 140여만 평,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원..... 그 동안 금단의 섬으로 더럽고 위험한 곳 인양 가면 안되는 섬이었고 갈 수도 없는 섬이 소록도였다.. 하지만 소록도는 1988년 개방되어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천해의 섬, 천상의 섬....갖가지 아름다운 수식어들이 총 동원되어 섬을 미화하기 시작한다. 소록도의 아픔과 슬픔은 모르는 채... ![]()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섬.. 그 섬..소록도에 도착했다. 차를 가져오지 않았기에 배에서 내려 소록도 길을 걸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섬의 분위기가 이상하리 만치 조용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풀벌레 우는 소리와 새소리뿐..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소록도라는 섬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혹시 전염이라도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섬을 찾은 이들의 표정도 섬의 표정과 같아지려 애를 썼다 나도 같은 표정으로 숲으로 둘러 쌓인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얼마 후 시야가 넓어지며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 비어 있는 집 마냥 적막에 마을.. 그리고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들의 섬이고 마을이라고 들어 왔기 때문에 이 마을이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마을인줄로만 알았는데 한센병 환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알게된 이유는 여기가 1번지이기 때문이다. 소록도는 1번지와 2번지로 구분이 된다 한다. ![]() 그리고 2번지인 나환자들의 주거지는 들어갈 수 없고 혹시라도 구경 삼아 들어가서는 절대 안되는 곳이다. 마을에는 단지 아이들만이 있었다. 땅바닥에 무언가를 그리며 말이 없이 노는 아이들.. 일제시대 낡은 건물이 늘어서 있는 곳을 지나 길을 따라 내려가니 소록도 해수욕장이 보인다. 맑은 다도해상의 바다... 이런 섬에 해수욕장 하나 있는 것이 뭐 이상하게 보이겠냐 만은 섬을 방문한 사람들 모두들 한번씩은 놀라게 된다. 무게감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은 해수욕장에서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천진스럽게 변한다. ![]() 이것은 분명 소록도의 즐거움이다... 해수욕장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터라 수영복 같은 것은 가져오지 않았기에 물놀이하는 사람들만 구경하고 다시 중앙공원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마을쪽에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 중앙공원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대충 보아도 몇 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듯한 나무들이 바다를 끼고 길게 늘어서 있는 가로수 길을 지나면 소록도 국립병원이 보인다. ▶ 소록도의 아픔과 눈물...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 곡직하고 가두어 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은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내가 불신자였다면 이 생명 가치 없을 바에는 분노를 기어코 폭발시킬 것이오나 주로 인해 니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니다.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두 괴로워서 이불 껍질을 뜯어 목매달아 죽으려고 했지만 내 주의 위로하시는 은혜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께 감사하나이다 저희들은 반성문을 쓰라고 날마다 요구받았어도 양심을 속이는 반성문을 쓸 수 가 없었노라 김정균(金正均) 지음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려 한다. 분명 내 자신의 일이 아니건만 온 몸 구석구석 전율이 일며 아픔이 느껴지고 그 아픔은 이내 눈물이 되어 흐른다. 그렇게 소록도에는 슬픔이 있다. ![]() 그리고 그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한번쯤 잠시 숨을 멈추게 된다. 감금실과 검시실... 감금실은 일제말기 소록도 병원의 부당한 대우와 박해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한센병 환자들을 가두어 놓고 고문을 했던 곳이고 검시실은 한센병 환자들의 정관 수술을 강제적으로 집행 했던 곳이다. 물론 요즘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아니고 옛 일제시대 때 박해받았던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시키기 위해 병원측에서 보존해 놓은 건물이다. 위의 시는 그 건물 중에 하나인 감금실에 갇혀있던 환자가 쓴 시로 시의 내용을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박해가 있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들도 분명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하나이건만 겉 모습이 흉하다는 이유로 세상과 사회에서 추방당했고 안식을 찾기 위해 찾아온 소록도 마저 자신들을 박해했던 것이다. 건물의 이름부터가 무시무시한 만큼 건물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풍기는 느낌마저 음산한 기운이 돈다. 많은 원혼들이 한을 풀지 못하고 감금실을 떠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두려움은 오래지 않는다. 잠시 후...두려움을 느낀 잠시 후에는 조용히 엄숙함이 서서히 밀려온다. ![]() 검시실은 일제가 한센병을 절멸한다는 이유로 단종수술을 강제적으로 집행했던 곳인데 주로 감금실에서 살아 나온 한센병 환자들이 끌려가 수술을 받았다. 또 부부의 동거를 하기 위해서는 단종수술을 받아야만 부부의 연을 맺고 동거를 할 수 있었다 한다. 타의에 의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종족번식을 위한 신의 섭리마저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한센병 환자들은 인권마저도 그들에게는 사치였던 것이다. 그 검시실에는 당시 단종수술을 받았던 환자의 가슴 아픈 시가 적혀있다. 그리고 이 시로 누구나 섬에 들어올 때부터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소록도의 슬픔으로 이내 사라진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이동(李東)지음 검시실, 감금실을 지나면 소록도의 생활 자료관이 기다린다. 1관과 2관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제 1관은 옛 소록도 원생들의 생활상을 전시한 곳으로 당시 쓰던 생활물품이라던지 치료 도구 등 소록도를 알기 위해 필요한 갖가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 2관은 그들의 종교 등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외면할 때 종교인들은 그들과 함께 있었다. 비단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은 멀리한 채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려는 의사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슬픔과 절망밖에 없던 소록도에 조금이나마 기쁨이 함께 공존하는 것일 것이다. 검시실..감금실..전시관등을 지나면 이제부터 눈앞에는 세상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태어나 처음 보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나무들이 온 공원을 뒤덮고 있고 그 나무들의 모양이나 색의 대비는 세상의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다 할 정도로 아름답다. 즉 아름답다라는 말은 이 공원을 위해 만들어진 말일 정도로 여긴 분명 완벽한 천국이다!! ![]() 공원 중간 중간에는 이 구라탑 외에도 각종 공적비라던지 종교상등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라는 시가 새겨져 있는 커다란 바위다. 보리 피리(한하운) 보리 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 꽃 청산 / 어릴 때 그리워 /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 인환의 거리 / 인간사 그리워 /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 눈물의 언덕을 /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라는 시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 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또 노래로도 많이 불려져 이 바위를 보는 순간 모두들 반가워 하지만 이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는 바위에는 또 다른 아픔과 슬픔이 있다. " 매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 바로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는 바위의 이름이다. 이 바위는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육지에서 배로 끌어다 놓은 것인데 눈짐작으로 대충 보아도 족히 수십 톤은 되어 보이는 듯한 바위를 요즘 같은 현대적인 중장비도 없이 일제시대 끌고 오려 했으니 얼마나 많은 인력들이 투입이 되었겠는지는 안 봐도 뻔한 노릇이다. 그리고 그 인력들 모두가 한센병 환자들이었을 것이다. 바위를 나르기 위해서 그 끈을 어깨에 매면 허리가 부러져 죽기도 하고 힘이 들어 바위를 놓으면 채찍으로 맞아 죽기도 했다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한다. ![]() 그들...한센병 환자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대상은 오직 종교뿐이었을 것이다. 천형(天形)이라 불리며 하늘의 징벌로만 생각한 한센병을 신에게서 구원받고자 절실히 기도하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앙공원 곳곳에서는 찬송가의 노랫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고 종교의 조각상들이 의지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록도의 중앙공원은 그냥 저절로 만들어진 공원이 아니다. 일제 수호원장 시절 수많은 나환자들의 강제 노역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그렇기에 한센병 환자들의 피와 맞바꾼 공원이다. 그런 공원을 아름답게 감상만 하고 흔적을 남긴다거나 하는 짓은 삼가야 한다. 하지만 소록도 중앙공원의 현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들의 구원의 대상인 작은 연못에 있는 예수상에 동전을 던져 행운을 빌기도 하고 "잔디보호"라는 말도 무시한 채 배경만 멋있다면 쑤시고 들어가 사진을 찍어댄다. 평온한 오후에 그들의 공원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 무엇이 천국의 섬이란 말인가..?? 자화상(한하운) 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포만증이냐. 한때 나의 푸른 이마 밑 검은 눈썹 언저리에 매워본 덧없음을 이어 오늘 꼭 가야 할 아무데도 없는 낯선 이 길머리에 쩔룸 쩔룸 다섯 자보다 좀더 큰 키로 나는 섰다. 어쩌면 나의 키가 끄는 나의 그림자는 이렇게도 우득히 온 땅을 덮는것이냐 지나는 거리마다 쇼우 윈도우 유리창마다 얼른 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 그러나 그 천국은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한센병 환자들의 천국이다. 사회에서 버림받았던 이들이 결국 마지막으로 찾아온 길 소록도... 그들은 그곳에서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피와 맞바꾼 섬이다. 그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천국이란 이름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소록도는 성한 인간들의 천국이다. 늘 북적이는 관광객들로 인해 섬의 주인인 한센병 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 섬에서 마저 섬과 격리가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 한센병 환자 수가 줄어든다 해서 고흥군에서는 이 섬을 독식하려 하고 있다. 관광단지를 조성하려는 말도 안되는 엄청난 포부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그들을 내쫓았던 인간들이 말이다... 그들의 피와 맞바꾼 섬을...이제야 자리잡기 시작한 그들의 천국을 말이다... 이런 한센병 환자들의 일들은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많은 아픔이 있었다. 우리들과 다른 겉모습 때문에 그들에겐 많은 아픔이 있었다. 여기 소록도 국립병원 14, 20대 조창원 원장의 글을 싣는다. 1945년 8월 20일, 오순재 일당이 전남 고흥 치안대를 불러 병원 운영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반대한 환자 대표 90명을 부락마다 찾아다니며 끌어내어 무참히 학살하지 않았는가! 이 학살 과정도 어떤 야만인보다도 더 야만적이었다. 채 죽지 않고 살려 달라는 사람을 산 채로 송탄유를 뿌려 타죽게 하고, 환자 대표인 이종규를 붙잡아 산 채로 화장시켜 버리는가 하면 곡물 실러간 환자마저 해상에서 기다렸다가 배에 올라가 마구 쏴죽이지 않았는가? 이것뿐이랴! 1957년 8월 소록도에서 회복된 환자들이 잘 살아보려는 유토피아 건설의 꿈을 안고 삼천포 앞바다 빅토리 섬을 개간하다가 정착을 반대하는 주민 500명의 돌과 죽창으로 습격을 당해 23명이 죽고 70명이 중상을 당하지 않았는가? 또, 1964년 소록도의 회복자들을 정착시킬 목적으로 오마도 간척사업을 정부가 주도해 놓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과 정부가 합작하여 소록도 회복자들이 간척해 놓은 제2의 고향 330만평 옥토를 송두리째 강탈해 가지 않았는가? 이러한 끔찍한 일들은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유치하고 야만적인 행동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이 재현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이 할 일이 있다. 지금 한센병 환자들은 고령화되어 매일 매일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지나치게 억압되었던 정책, 편견과 차별 등과 강제로 행한 단종수술 등은 명명백백 우리 사회와 우리 나라의 잘못된 치부가 아니었던가? 이들의 시커먼 운명 속에서 고통스럽고 한스러웠던 우리 나라의 비극의 한센병 역사의 사실에 대하여 선진국 사람들과 같은 따뜻한 인정으로 대해 주지 못한 비인간적인 만행도 역사의 사실대로 기록되지 못한 채 환자들이 죽어 가는 동시에 모든 것이 과거의 암흑 속으로 매몰되려고 하고 있다. 여러분이 이것을 소멸, 풍화시키면 우리 나라는 영원히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지 못하고 병든 자, 약한 자, 힘없는 자에 대한 잘못을 재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약한 자 입장에 놓여 있는 병든 자에 대하여 용서할 수 없는 자유와 인권침해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우리 소록도의 90년 역사를 찾아서 모든 것을 환자들에 대한 사람으로서의 잘못과 사회의 잘못을 똑바로 밝히고 우리 한국의 근대 사상에 올바로 기록하여 국민으로서 또는 국가로서 마음 깊이 새겨두고 반성케 하며 또 다시는 이러한 악습이 재판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모두 일어나라. 그리고 소록도 중앙리 앞바다에 비참히 죽어간 환우들의 애도의 비를 세우고 강탈당한 오마도 간척지에는 한록비를 세워라. 또 저 멀리 빅토리 섬에도 환우들의 애도의 비를 세워라. 우리들은 힘을 모아 소록도를 병들고 약한 자들의 정의의 발생지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들을 죽이고 고향을 강탈해 간 자들은 아직까지 살아 있다. 이들을 찾아 강탈자, 살인자로 기록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을 죽인 자, 약탈자들이 행한 야만적인 행위가 애국자의 행위로 변한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마치 자기의 조상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소록도는 천국이 아니다. 그들의 천국이 아니다. 사회에서 그들을 내쫓았던 성한 인간들의 천국이다. 천국을 말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 가지 말았어야할 섬 소록도... ![]() 성한 몸으로 소록도엘 가지 말았어야 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올 바엔 그 섬엘 가지 말았어야 했다. 신께 감사드린다. 그들이 구원을 바라던 신께 감사드린다. 성한 몸뚱아리에 감사하고 감사한다. 중앙공원의 아름다움과 아쉬움을 멀리하고 소록도항에서 섬을 떠나는 배를 탔다. 소록도가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배에선 소록도를 둘러보고 떠나는 사람들의 엄숙함이 금새 전염된다. 무엇을 느끼고 돌아가는 것인지.... 소록도를 다녀온 이들의 모습에서 그런 의문이 난다. 또한 나도 무엇을 느끼고 이 길을 돌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소록도에서 멀어져 갔다. 보리피리 불며 인간사 그리운 곳이 아닌 환한 웃음이 가득한 곳이 되어 다시 돌아올 그날을 기다리며... 끝으로 죽어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파랑새가 되고자 했던 나병 시인 한하운의 "파랑새"로 글을 끝마친다. 파랑새(한하운)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 소록도의 못다한 이야기들.. ♠ 한센(hansen)병 이해 한방에는 개라(疥癩), 대풍창, 풍병이라 불렀다. 한센병이란 노르웨이 의학자였던 한센(hansen Armomer Gerhavd henrik 1841~1912)이 1897년 처음으로 한센균을 발견하여 배양에 성공함으로 한센병을 병균에 의해 감염되는 병으로 공포되고 본격적인 치료약이 개발되어 한센병이 완치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병은 원래 병균이 너무 약해서 전염되는 확률이 적을 뿐 아니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염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1992년 세계나학회 서울총회에서 한센병 종료를 선언을 했으며 , 한국에서는 한센병이 끝난 상태이다. 발병즉시 정상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여 그 후유증으로 인해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으나 사실상 건강을 회복 한 것이다. 한센균(Mycobacterium Leprae)은 너비 0.2~0.4㎛ 길이 2-7㎛의 간균으로 세대기간은 10-31일이 균이 많이 뭉쳐 있는 것이 결핵균과 다른점이다. 붉은색 막대 모양으로 염색되어 있으며 치료약에는 디디에스(DDS)와 클로파지민(Clofazimine)과 리팜피신(Rifampicin)와 프로치오나마이드(Prothionamide)등이 개발되어 한센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100%치료가 되는 병이며 완치되는 피부질환이다. 그러므로 이 병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야 할 것이며 이제는 이병을 반드시 세계 통용어로 쓰는 한센씨병으로 호칭을 해야하며 성경을 인쇄하는 대한 성서공회에서는 한센씨병으로 번역해야 할 것을 건의하며 모든 언론논설위원들과 특히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할 때 과거 아픈 마음들을 들추어 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인권회복을 위해 앞장서야 할 것을 부탁드린다. 소록도 신성교회 참고 자료(http://members.tripod.lycos.co.kr/namcul) ♠ 교통 소록도로 가기 위해서는 전라남도 고흥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한다. 녹동항에서는 약 15분 간격으로 배가 한 척 씩 다니고 있고 소록도까지 약 5분 정도 걸린다.(요금 : 1인당 왕복 900원, 승용차 왕복 9,000원) 첫 배 - 동절기,하절기 07:00 마지막배 - 동절기 17:30, 하절기 18:00 o 소록도 출입제한 시간 - 동절기 16:00, 하절기 17:00 o 녹동항 가는 길 - 대중교통 서울 강남 터미널에서 녹동행 고속버스가 08:00부터 17:30까지 1일 4회 운행 광주나 여수에서 녹동항으로 가는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 - 자가용 남해고속도로 주암IC를 빠져 나와 27번 국도를 타고 벌교를 지나 고흥 방면으로 가다보면 녹동항 이정표가 나온다. o 소록도에서의 교통 소록도에서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다. 차를 가지고 들어가거나 아니면 걷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소록도 중앙공원 입구에 승합차가 있어 그걸 이용해도 된다. 무료는 아니고 중앙공원에서 소록도항 까지 1,000원을 받고 있다. 그러니 소록도 해수욕장 및 중앙공원은 걸어서 돌아보면 되고 중앙공원에서 나올 때 봉고차를 이용하면 된다. ♠ 숙박 소록도에서는 숙박할 곳이 없다. 섬의 출입 제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시간 안에 섬을 나와야 하며 녹동항 일대에는 민박 및 여관이 즐비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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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행을 만드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