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에 발 설치해 김 양식..일제 강점기 시작해 번성하다 쇠락
재래식 김 생산 중단에도 해태조합 건물 등은 원형 유지
(고흥=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신평(新平)마을.
[전남 어촌특화 지원센터 제공=연합뉴스]
이름처럼 평화롭고 고즈넉한 어촌 복판에 금산 해태조합 건물이 있다.
쓰임을 다한 건물에는 '協同奉仕(협동봉사) 어서 오십시오'라고 적힌 돌 간판이 외로이 자리를 지킨다.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담은 이 건물은 1922년 붉은 벽돌에 슬레이트 지붕이 얹힌 전형적인 일본식 구조로 지어졌다.
흰 페인트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붉은 벽돌은 당시 소록도 벽돌공장에서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어촌특화 지원센터 제공=연합뉴스]
이 마을에서는 1918년 목가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이 말뚝을 박아 재래식 해태(김)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호롱불을 밝혀가며 밤낮없이 김을 생산할 만큼 번성했던 시절도 있었다.
프로 레슬러 김일 선수의 건의로 고흥 섬 중에서는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온 곳이라고 마을 주민은 뽐냈다.
김 양식은 지주식과 부유식이 있지만, 최근에는 부유식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모두 포자를 양식 망에 붙도록 하는 채묘(採苗) 작업을 거친다.
지주식은 기둥을 세워두고 발을 설치하는 것이고, 부유식은 수면 위에 양식시설을 띄워놓는 방식이다.
부유식은 40일 정도 지나면 수확할 수 있지만, 지주식은 배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강진군 제공=연합뉴스]
그만큼 햇빛에 장기간 노출하면서 광합성을 일으키는 게 지주식 김이 본연의 맛과 향을 내는 비결이다.
생산량은 부유식이 압도적이지만 지주식에 대한 소비자 선호는 여전했다.
신평 김의 인기에 동네 개들도 5천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회자하기도 했다고 마을 주민들은 회상했다.
하지만 부유식 양식이 늘어나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마을의 전통 방식 김 생산도 쇠락했다.
거금도 관문이었던 신평마을은 선착장 주변이 항상 북적였지만 2013년 거금대교가 개통하면서 오히려 인적이 뜸해졌다.
항구가 번창했던 시기 들어섰던 수협은행, 김 가공공장 등 건물의 활용 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가 됐다.
신평마을 주민 진평화(73)씨는 "일제 당시 수탈과 저항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박물관, 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보는 자료 전시관 등으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며 "박물관에서는 역사를 체험하고 주변 식당에서는 자연 밥상을 맛볼 수 있게 한다면 관광산업이 마을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어촌특화 지원센터 제공=연합뉴스]
김중관 전남 어촌특화 지원센터 과장은 "현재 신평마을은 손이 덜 가는 미역을 주로 생산하고 6차 산업화 시범마을로도 지정돼 미역 가공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라며 "지주식 김 생산은 중단됐지만, 남해안에서 수확한 김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전초기지였던 마을의 역사성을 살리는 방안은 검토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sangwon700@yna.co.kr
연합뉴스 링크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6/26/0200000000AKR20170626076000054.HTML?input=1179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