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촌마을
동촌
동촌마을
by 거금도 posted Jan 06, 2004
동촌마을
Who's 거금도
갈색 바위, 노랑 모래, 회색 이끼, 초록 나뭇잎,
푸른 하늘, 진주빛 먼동, 산마루에 걸린 자주빛 그림자,
해질녘 진홍빛 바다위의 금빛 섬,
거금도
첨부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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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봉 윤숙 2004.01.1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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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 2004.01.18 13:43안녕하세요^^
예서 또 뵙네요. 작년에 체육대회랑 결혼식때 뵌 거 같은데....
양훈이 남훈이 동생이라면 기억나실랑가도 모르겄네요(xx22)
동촌에 박씨는 우리집만?
근데 우리 동네가 왜 저런다요?
그 전에 길도 괜찮았는데...
고향 떠난 지 언젠지 열 손가락 가지고도 모자라네요
언제 찾을 지 기약도 없구...
아~~~~ 가보고잡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이따가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기로 했는데 분위기는 딱이네요
향우선후배님들!
술 쪼금씩 드시고, 복은 마니마니 드세요(xx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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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 2004.01.18 14:47용두봉 !!!형님
저 닉을 적대봉을 쓰고잇는 ....입니다
형님에 소실적에 깊은정이 있서기에 지금도 잊지못한
사연들 그추억이 새롭게 생각 나시계지요
항시 웃는보습으로 다정다감하게 우리네를
보듬아 주시는 형의마음을 언제나 갚을런지.......
항시 감사하면서 ..좋은형으로 간직할게요
언제가는 중촌뒤로차길 따라
용두봉 줄기에있는 절에서 잠시머물면서
소질적에 소풍을 댕겨왓던 추억들이 떠올라..잠시 머뭇거려지요
우리네 거금인ㅇ이라면 한번쯤 머물려 계지요..그추억
그줄기 따라 내려가믄 파산재라고 한가요
차를 주차 해놓고 길따라 적대봉을 한걸음씩
올라가면서 이생각 저생각 올라가다 보믄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네 섬이 한눈에 들어오지요
그맛에 젖어 고향 갈때마다 적대봉을 올라가곤 한답니다
그래서 적대봉을 싸랑한 맴에서 닉을
적대봉 이라고 저는 붙쳐 습니다
누가 뭐시라고 하지 않케지요
이번 설날에는 고향을 못가되서 써운하지만
가시는 모든분들 잘 댕겨오시고...
형님도 잘 댕겨 오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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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봉 2004.01.19 17:28은희야 반갑다
은희네 외가 집이 우리집 바로 위
영수 형님댁이지 잘 알고 있다마다
그래 잘 살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고
이렇게 반겨 주니 고맙기도 하지요
동네 친구들 자주만나고 있다니 다행이고
그래 어머니께서는 건강히 잘계신지 안부 여쭙네 그려
물론 양훈이 형님은 사업 번창하여 꾸준하시겠지
은희야 설 에 떡국 많이 먹고 복 많이 받아라
애들도 건강히 무럭무럭 잘 키우고..................
갱호 동상 고맙네 그려
토요일 개업식에서 얼굴만 보고 가버리니 마음이 허전 하더군
하시는 사업 잘되고 있다니 다행이오. 막걸리 한잔도 못하고
바빠서 가는 경호를 보고 대견 스러웠다네
그래 이번 설에는 고향에 못 간다고
금산 술이 남아돌겠네 그려.............
경호 설 잘보내고 31일날 시간되면 향우회 에서 얼굴한번 봅시다
자네의 건투를 빌면서 이만
윤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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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 2004.01.22 15:40거금도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 또 우리 마을을 오시어 수고로운 일을 하셨답니까?
지금은 마을이 어수선하지만 금년 추석때면 잘 정리가되어 아름다운 마을로 거듭 태어날겁니다.
재삼 감사드립니다.(xx16)
동촌을 모르시나요
나의 살던 곳.... 골 ~몰
그라고 동촌(洞村) 똥~뫼(東山)*
나는 늘상 우리동네를 꿈꾼다
내가 태어나서 성장했고, 수 많은 사연과
추억들을 간직한곳 용두봉 산아래 첫째 마을
나는 지금도 나의 nickname을
용두봉(龍頭峰)으로 사용한 까닭은
내가 용두봉으로 부터 인생을 시작했다는 것
송광재에 초승 달 뜰때에 어머니 날 나으시고
흔한 아들**이라고 미역국 대충 잡수시고 다음날
일 나가시는 우리 엄니 너무나 마음 아파라
눈만뜨면 네모바위, 틈만나면 용두 산자락 안에서
유소년기의 전부를 보냈고, 나의 조상, 특히나
조부모님과 존경하고 경애하는 부친 그리고 숙부님께서
편히 쉬고 계시는 땅 이므로 더욱 애절 하고 간절함이
묻어나는 곳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애 스러운 어머니 이월금 여사께서
혼자 집을 지키고 계시네, 나는 하루라도 고향산천 특히나
용두봉 산하에서 일어났던 소시절쩍 일들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하루를 마감 하기가 쉽지 아니 하니 이 또한
중대차한 병이 아닌가 하오리
나는 아직도 꿈을 꾸는 소년인가 하오.........................................................................
주)* 똥뫼의 어원은 아마도 東山(동쪽기슭의 산)의 자구를 쎄게 발음하다보니
변천을 통하여 오늘의 똥뫼가 된것으로 보여짐
참고로 똥뫼는 동촌마을 뒤편 산이고 종촌에서는 마을 앞산이 됨
** 흔한 아들이란? 나는 5남2녀중 6째이므로 아들이 많았던 것의 표현임
그러나 나의 부모님께서는 자식에게 주는 정이 7남매 모두에게 다 똑같아
찐한 사랑과 애정으로 키워서 오늘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여
주신것에 늘 감사드리고 경애합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 석당(石塘) 노병수님의 일대기를 정리하여 우리 가정의
생활모습 행동양식 그리고 아버지의 전기를 후손께 전달하고 싶은것이
가장 큰 사업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내가 소시쩍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어려워 했던것의
1/2 아니 그 이하도 아니되니 나는 분명 자식을 잘못 양육했나 하오만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니 미래의 희망을 위해 아버지기 나에게 했던것 처럼
나 또한 그렇게 그렇게 가르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