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 id="watch-headline-title" class="yt" style="margin: 0px 0px 5px; padding: 0px; border: 0px; font-size: 24px; color: rgb(34, 34, 34); font-weight: normal; line-height: normal; overflow: hidden; white-space: nowrap; word-wrap: normal; text-overflow: ellipsis; font-family: arial, sans-serif;"><span id="eow-title" class="watch-title long-title yt-uix-expander-head" dir="ltr" title="땅끝해남 지주식 친환경 명품김 생산 모습"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font-size: 0.9em; cursor: pointer; color: rgb(0, 0, 0); -webkit-user-select: auto; letter-spacing: -0.05em;">땅끝해남 지주식 친환경 명품김 생산 모습 ....</span></h1><div><span class="watch-title long-title yt-uix-expander-head" dir="ltr" title="땅끝해남 지주식 친환경 명품김 생산 모습"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cursor: pointer; -webkit-user-select: auto;"><div><span style="font-size: 11px; letter-spacing: -0.550000011920929px; line-height: 16.200000762939453px;">(김용필/ 김 이야기)</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1px; letter-spacing: -0.550000011920929px; line-height: 16.200000762939453px;">“해우를 ‘김’이라 부른 유래</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1px; letter-spacing: -0.550000011920929px; line-height: 16.200000762939453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김은 우리 식탁에 올라 간간하게 구미를 당기는 식품이다.</span></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남녀노소 누구나 김을 좋아한다. 외국인도 맛을 알고 좋아하기에 수산물 수출의 주 종목이기도 하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기름 발라 잘 구운 김 한 장이면 한 끼 반찬이 되었고 맨 김으로 먹어도 군짓거리가 되었다. 그런 해초가 우리 식탁에 올라 맛깔나는 식품으로 변신하여 부른 유래를 말하려고 한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김은 원래 해태(바다 파래)를 거두어 종이 장처럼 얇게 널어 말린 것을 해우(海禹)라고 한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현산어보에 해태를 해우로 만들어 ‘김’이란 이름을 붙인 곳은 전남 광양의 태인도에 사는 김씨 라는 분이었다. 태인도는 광양제철 공사로 사라진 섬이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현 광양시에 속하지만 50년 전만 하여도 여수시 돌산군에 소속 된 섬이었다. 섬진강의 하구 태인도와 금호도는 갯벌의 자양분이 많아 다종의 해산물의 보고였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1734년 광양 현감으로 와 있던 허심이란 분이 ‘김여익의 묘표(墓表)’란 김 이야기로 남겼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기록에 의하며 광양 태인도에 살았던 김여익이 김 양식 법을 개발했다고 적었다. 그 후 정조 때 정약전이 남긴 현산어보에도 기록되었고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전한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태인도는 임진왜란 땐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으나 1636년 병자호란 때 한양에서 살던 김씨가 태인도에 피난 와서 살게 되었다. 김씨는 바로 임진왜란 때 노량해전에 참전한 병사였다. 김여익은 바로 그분의 아들이었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김여익은 해변으로 떠내려 온 나무가지에 해태가 붙어 자라는 것을 보고 갯벌에 대나무 발을 만들어 해태를 양식 하였고 이렇게 거둔 해태를 거두어 대발에 얇게 펴서 종이처럼 말렸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이것을 처음 양식하여 만든 해우인데 김씨. 즉 김여익이 만들었다고 하여 ‘김’ 이라고 불렀다. 이 김을 하동 장에 내다 팔면서 김가네 김이라고 이름이 났고 그것을 남해안 여러 섬의 어부들이 배워서 김양식을 하였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그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태인도에서 김을 양식하여 큰돈을 벌었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이 기록은 광양문화원의 김 시식 유물 전시관에 그 때의 김 생산 도구 등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1919년 김해김씨 종중에서 건립한 영모재, 김여익 공의 위패와 묘표문이 기록되어 있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김양식 방법에는 얕은 개펄에 말뚝을 박아서 양식하는 지주식 방법과 구물이나 발을 바다에 띄워 양식하는 부유식 방법이 있다. 김양식은 간만의 차에 많고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은 갯벌이라야 영양분이 많아 김맛이 좋다.</div><div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 </div><div><span style="font-size: 0.9em; letter-spacing: -0.05em;">바로 광양만 태인도는 그런 섬이었다. 그뿐 아니라 태인도엔 새조개, 피조개를 비롯하여 다양한 패각류가 서식하는 맛의 보고였다.</span></div></span><div><span style="font-size: 11px; letter-spacing: -0.550000011920929px; line-height: 16.200000762939453px;">김용필 소설가(전남 여수출신)</span></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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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땅끝해남 지주식 친환경 명품김 생산 모습 ....(김용필/ 김 이야기) “해우를 ‘김’이라 부른 유래 // 김은 우리 식탁에 올라 간간하게 구미를 당기는 식품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김을 좋아한다. 외국인도 맛을 알고 좋아하기에 수산물 수출의 주 종목이기도 하다. 기름 발라 잘 구운 김 한 장이면 한 끼 반찬이 되었고 맨 김으로 먹어도 군짓거리가 되었다. 그런 해초가 우리 식탁에 올라 맛깔나는 식품으로 변신하여 부른 유래를 말하려고 한다. 김은 원래 해태(바다 파래)를 거두어 종이 장처럼 얇게 널어 말린 것을 해우(海禹)라고 한다. 현산어보에 해태를 해우로 만들어 ‘김’이란 이름을 붙인 곳은 전남 광양의 태인도에 사는 김씨 라는 분이었다. 태인도는 광양제철 공사로 사라진 섬이다. 현 광양시에 속하지만 50년 전만 하여도 여수시 돌산군에 소속 된 섬이었다. 섬진강의 하구 태인도와 금호도는 갯벌의 자양분이 많아 다종의 해산물의 보고였다. 1734년 광양 현감으로 와 있던 허심이란 분이 ‘김여익의 묘표(墓表)’란 김 이야기로 남겼다. 기록에 의하며 광양 태인도에 살았던 김여익이 김 양식 법을 개발했다고 적었다. 그 후 정조 때 정약전이 남긴 현산어보에도 기록되었고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전한다. 태인도는 임진왜란 땐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으나 1636년 병자호란 때 한양에서 살던 김씨가 태인도에 피난 와서 살게 되었다. 김씨는 바로 임진왜란 때 노량해전에 참전한 병사였다. 김여익은 바로 그분의 아들이었다. 김여익은 해변으로 떠내려 온 나무가지에 해태가 붙어 자라는 것을 보고 갯벌에 대나무 발을 만들어 해태를 양식 하였고 이렇게 거둔 해태를 거두어 대발에 얇게 펴서 종이처럼 말렸다. 이것을 처음 양식하여 만든 해우인데 김씨. 즉 김여익이 만들었다고 하여 ‘김’ 이라고 불렀다. 이 김을 하동 장에 내다 팔면서 김가네 김이라고 이름이 났고 그것을 남해안 여러 섬의 어부들이 배워서 김양식을 하였다. 그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태인도에서 김을 양식하여 큰돈을 벌었다. 이 기록은 광양문화원의 김 시식 유물 전시관에 그 때의 김 생산 도구 등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1919년 김해김씨 종중에서 건립한 영모재, 김여익 공의 위패와 묘표문이 기록되어 있다. 김양식 방법에는 얕은 개펄에 말뚝을 박아서 양식하는 지주식 방법과 구물이나 발을 바다에 띄워 양식하는 부유식 방법이 있다. 김양식은 간만의 차에 많고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은 갯벌이라야 영양분이 많아 김맛이 좋다. 바로 광양만 태인도는 그런 섬이었다. 그뿐 아니라 태인도엔 새조개, 피조개를 비롯하여 다양한 패각류가 서식하는 맛의 보고였다. 김용필 소설가(전남 여수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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