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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월포(月浦) : 마을앞 포구가 반달형으로 생겨 “달개”라 부르다가 訓借(훈차)하여 월포라 하며 조선후기의 옛지도에도 월포로 표기되어 있으며 마을뒤의 고개를 “달갯재”라 하였는데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月浦(월포)마을로 현재에 부르고 있다.
2006.06.14 23:09

망향

조회 수 2759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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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린시절부터 왜 우리 동네이름이 "오룡동"일까? 항상 궁금했다.
 한자로 쓰면 五龍洞이라서 분명 우리동네 출신 중 5명은 적어도 큰 인물이 날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했었다.

또 가만 동네 주변을 둘러보면 크고 작은 5개의 봉오리로 포근히 감싸여 있는 분지이기도 하다.
아마 둘 중 하나일거야???!!!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고 했던 옛 선인의 글귀처럼 내가 태어나서 얼굴을 익히고 관계를 깨달으면서 기억속에 남아있던 많은 사람들이  한포기 풀잎처럼 스러져가버렸다.
 지금  남아 있는 몇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가슴속에는 그때 만났었던 그 모든 사람들이 뚜렸하게 각인되어 있다.
지금도 내 앞에 현신한다면 나는 그들을 분명 알아 볼 것이다.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고 주위에 있던 기억에 남아있던 나무들의 키가 훌쩍 커버렸지만  그래도 옛모습 그대로인걸..................!

지금은 서너채의 초라한 마을로 바뀌었지만 오룡동 그 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분가하고 얼마나 많은 숫자로 일가를 이루었는지..................!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어느 봄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그 언덕에 나무가 새싹을 키우고 새가 지저기는 그아련한 추억을 내 후대가 함께하지 못하는 단절의 아품이 오늘 비내리는 어느 도회지의 삶을 더욱 슬픔으로 젓어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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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촌 2006.06.15 12:02
    오룡도(島)인줄 알았는데....오룔동이네요
    마을 주위에 봉우리가 다셋게 있다면  오봉동이 변형하여
    오룡동으로 명칭이 바뀌였나봐요
    고향 마을에 대한 아쉬움이 아련하시겠습니다.
    마을이 어디쯤 있나요?
    어디분한테 물어보니 정확히 모르드라구요
    항상 마음의 고향을 담아두시고 사는 동안 자녀들에게 늘 들려주세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 ?
    ohshire 2006.06.15 12:11
    오룡동!
    무척이나 많이 눈 앞이 아른거리는것은 ...
    오룡동 동네 앞 둔벙에서 붕어 낚는 일이며,
    정말로 맛있던 (기택이네 집에서) 딸기 먹던 일이며,
    우리 동창이 네명(모두 한씨이고, 인순이, 인자, 상영이, 기택 또는 연택이)이나 있어 놀러 다니던 곳이었으니..
    군대간다고 명천친구들, 월포친구들, 오룡동 친구들이 모여
    신나게 밤을 지새우던 오룡동.
    그때 내가 불렀던 노래가 "장현"의 "미련"이였는데,
    오룡동 후배 간내(인자친구 동생)하고 나하고 번갈아 가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 대다가
    노래 끝을 잊어먹고 헤매던 밤이며...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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