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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쓰는 산행기 (# 41. 적대봉)

by 천창우 posted Feb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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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쓰는 산행기 (# 41. 적대봉)

                                                              천창우

 초하룻날 선산을 둘러보고 인사 다닌 일로 보내고 초이튿날 두 마리 토끼를 같이 잡기로 했다. 과일과 쵸코렛
 그리고 맥주 두어켄을 챙겨 넣은 배낭을 간단히 꾸려 집을 나섰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없어도 언제나 고향으
로 향하는 마음은 포근하다.

 벌교에서 고흥으로 들어서 동강을 지나려니 정오가 다 되간다. 아침도 거르고 나온 터라 놓칠 뻔한 동강 나들목
을 잡아들어 소문난 갈비탕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떼울까..... 하고 들렸더니 9일까지 쉰다는 출입문에 붙은 조
그만 쪽지만 보고 되돌아 나와야했다. 그래, 그럼 녹동에서 통장어탕이나 먹지 뭐!. 그러나 녹동에서도 식사할
 곳은 찾지 못했다.

 금산행 부두에 나오니 명절이라 차가 밀려선지 시간 없이 카페리가 뜨고 닿는다. 마악 떠나려던 금진행 배에 마
지막으로 내 애마를 싣고 뒤로 물러서는 녹동항을 바라보며 짭조름한 해풍을 가슴 깊게 심호흡 한다. 언제나 그
리운 바닷내음이다.


 소록도를 돌아 20여분, 금진나루에 닿으니 넓은 주차장엔 명절을 쇠고 나가려는 차로 가득하고 길에도 학교 앞
까지 도선 차례를 기다리는 차들로 줄을 이었다.

성치 파상재로 오르니 등산로 입구와 주차장이 잘 정비돼 있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보다 등산로도 환하게 잘 닦
아놓았고 파고라 휴게소도 세워져있어 흐뭇한 마음으로 마당재 능선에 올라서 봉수대를 바라보며 적대봉 정상
으로 향한다.   설 명절을 지내려 고향을 찾은 가족단위 등산객이 줄을 잇는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아래 붉게 익
은 맹감이 햇살에 참 곱다.

 옷을 벗은 억새꽃사이마다 적대봉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안겨있는 눈에 익은 마을의 정경이 참 정겹고 남지
나해에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은 눈부시게 섬들을 보듬고 내 가슴에 뛰어든다.


 정상 봉수대에 올라서니 2국 3도 12개 군을 볼 수 있다는 말마따나 사방으로 가슴이 후련하도록 툭 트인 전망
과 점점이 바다가 안고 어르는 섬들의 재롱이 곱고 바다에 반짝이는 햇살에는 벌써 이른 봄이 묻어 오르고 있다.

뒤편으로 소록도를 연결하고 이제 소록도에서 다시 거금도로 연결되는 연도교의 솟아오른 교각을 바라보니 이
제 다시는 외롭지 않을 고향이 반갑지만 왠지 마음이 답답한 까닭은 무엇인지 꼭 집어 대답하기 어렵다.
마치 순결을 내준 처녀의 가슴처럼.......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소풍, 그리고 몹시도 가물던 해 기우제를 위해 부모님대신 울역으로 올라왔던 곳, 그리고
 두어 차례의 등산 이였지만 내 마음속에 언제나 솟아있어 내게 힘을 실어주었던 고향의 뒷산 적대봉(해발
592m)이다.
봉화대는 조선 중기에 설치되어 남해안의 중요한 봉수로로 거의 완벽하게 원형이 잘 보존되어있는
 거란다.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내 고향 오천으로 넘어가는 등산로는 지난번에 갔었으니 이번엔 바로 계곡을 타고
 내려가는 물만내 코스를 잡기로 한다.

 다시 고갯마루로 내려와 휴게소 부근에서 계곡으로 내리는 길을 찾았으나 쉬이 눈에 띄질 않는다. 그새 억새와
 잡목이 욱어져 길이 묻혀버렸다. 흔적만 남은 길을 찾아 가시덤불과 억새풀 사이를 기어 멧돼지들이 뒤집어 놓
은 숲길을 한참을 내려가노라니 키가 큰 잡목림사이에 오솔길을 잡아든다.

 오천 내(川)의 발원지이리라. 작은 옹달샘에서 솟아 고여 흐른 물이 졸졸거리며 작은 또랑을 이루어 바다로의
 길을 시작한다.
군데군데 옛날의 숯 굽던 숯 구덩이가 방호처럼 널려있는 잡목이 하늘을 가린 오솔길을 따라 내
려가노라니 갑자기 눈앞이 트이며 물소리가 들린다.

 물만내다. 적대봉의 동쪽 능선과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계곡에 300여 m, 마치 고운 아낙의 흰 둔부처럼 이루
워진 골짜기의 하얀 넙더리에 맑은 물이 켜켜이 쌓인 지난 가을의 낙엽들 사이로 흐르고 있다. 흐르다 돌아서 여
울을 만들고 다시 흘러내려 작은 폭포를 만들고.... 길을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의 젖무덤 골짜기 어루듯 백옥 같
은 바위계곡을 따라 한없이 내려갔다. 


 끝자락에서 길을 잡아 오르려니 비자나무 향이 그윽한 그곳에도 커다란 아궁이 모습을 한 숯 구덩이가 있다. 일
제 강점기 시절 오천마을 각 호마다 숯 공납의 할당이 있었단다. 그래서 수목이 울창한 이곳에 숯을 굽고 험한
 길을 따라 이고 지고 내려왔었단다. 외할아버지가 유학을 가시고 남정내가 없는 내 외할머니는 억척스레 이 험
한 산길을 남들 두 배의 숯을 이고 내리셨다는 동네어른들의 얘기를 듣고 자랐었다. 그래서 이곳을 숯골이라 불
렀고 집도 서너 채 있어 염소 등을 기르며 사람이 살았었는데 어렸을 적 방목한 소를 찾아 이곳에 오면 염소나
산짐승을 막기 위해 높은 돌담으로 둘려진 논밭에는 지금쯤 보리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돌담만 욱
어진 잡목에 덮여 마삭줄이나 이끼 속에 졸고 언제부터인지 인적이 끊긴 묵어버린 논밭에는 덩굴과 가시나무
그리고 억새가 자라 길마저 삼켜버렸다.


 골마다 나무를 하려 소를 찾으려 헤매었던 내 발자욱이 아직도 선연히 찍혀있고 바위마다 산길마다 내 추억이
 잡풀처럼 무성하다.
여름이면 날마다 방과 후 소고삐를 들고 소를 몰려와 멱을 감았던 일본인들이 막았다는 콘
크리트 저수지는 몇 해 전 커다란 토사댐으로 쌓아 금산면의 상수원지로 바뀌었고 작은몰랑에 서면 옹기종기
 따숩게 모여 소근대던 초가마을은 군데군데 도시의 저택 같은 집들로 바뀌어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아직도 그날의 흐린 영상 속에 흑백사진으로 곱게 접혀있는 내 고향이다. 

 내 집인양, 정초에 모처럼 마음을 풀고 오수에 젖어있는 친구의 부인을 큰소리로 깨워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을
 겸한 정성과 사랑이 담긴 밥상을 받는다.
 친구야 고맙다. 새해에도 건강하고 늘 행복하거라.  

어릴적 주린 배를 채워주기도했던 맹감이 시린하늘을 배경으로 참 곱다.


적대봉을 오르는 능선


정상의 봉화대에서


벗은 억새 사이로 수원지와 내가 어릴적 자란 고향마을을 바다가 품고 있다.


오천 내의 발원지 이리라.


일제 수탈의 애환이 어린 숯가마 터.


가슴에서 잊혀지는 아픔처럼 숯가마터에도 잡풀이 덮여가고.....


여인의 살결 같이 희고 고운 물만내


그 누구의 손길이 이리도 곱게 다듬었을꼬.......


아마도 신선의 자녀들이 노는 놀이터 미끄럼틀이였겠지?.


산그늘도 놀려와 시린 물 속에서 잠이들고.


흐르다 실증나면 멈춰서서 돌아보고


다시 모여서 헤찰하며 놀다가는......


뒹굴고 놀다가 때묻은 마음 다시 씻고


수정을 깎아 계절도 깃들 집을 짓고 잠 자리에 들려는데.


얼음장 속에서도 봄기운이 돋고.....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는 자연은 스스로 길을 찾아 흐르더라.


울창하게 욱어진 자연 동백림 숲. 이곳에도 분재로 채취하고 잘라낸 흔적이 이곳 저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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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창우 2008.02.23 09:56
    거금도닷컴 운영자님께!.

    이렇게 훌륭한 마당을 펼쳐놓아
    흩어진 동향인의 마음을 모으고 그리움을 쏟을 수 있도록
    배려하시고 수고하신 운영자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용량 탓인지 아니면 운영의 결함 때문인지 애써 올린 그림들이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시를 올리면서 소스작업을 해서 올려도 마찬가지고
    직접 그림삽입을 시도해도 마찬가지고.......
    시의 3대 요소 중의 하나가 이미지와 함께 그림(영상)의 창조가 아니겠는지요?.
    쉬운 이미지 전달과 시각적 효과를 얻기 위해 픽쳐 된 그림을 올리는데
    자주 이렇게 사라져버리니 맥이 빠지고 홈피도 엉성해 보이지요?.

    수고하시는 김에 그 원인을 찾아
    더욱 아름답게 꾸며지는 거금도닷컴이 되도록 해 주신다면 참 고맙겠습니다.
    수고하시는 분들과 모든 거금인들께
    새해에는 더욱 복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인 / 고운 천창우 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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