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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멀었던, 그러나 꼭 가야만 할 길

by 무적 posted Jul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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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를 넘고 논길을 지그재그로 돌아야 했던 십리가 넘는 등굣길의
몸을 날려 버릴 것 같은 세찬 비바람과 온 길을 하얗게 뒤덮어 버린 눈은
대나무 비닐우산보다 여린 소년을
아버지와 담임선생님의 엄한 눈길보다 더욱 무섭게 했지만
그러나 학교는 가야만 할 곳이었습니다. 

 

빛고을의 고급제과점에서 학교 친구가 사준 빵과 우유는
일원이면 몇 개를 먹을 수 있었던 금산 장날의 풀빵과 광고 앞의 호야빵과
그리고 서방 팥죽거리의 팥죽 맛을 잠시나마 잊게 하였지만
그 맛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
소년은 다시 평지 다리께 도라무깡집의 풀빵 맛을 알아야 했습니다. 

 

자식들의 학비에 충당하고자 전답을 팔고
마지막에는 사시던 집마저도 팔아야 했던 아버지께서
부끄럽지 않으신 마음으로 지으신 문중 제답이
세찬 홍수에 논둑이 터졌을 때
서툰 지게질로 아버지를 돕다가 다친
허리의 통증은 소년을 몇 개월째 자리보전시키더니
어느덧 인생의 동반자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독재타도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다가
이제는 더 도망갈 곳이 없어 내게 왔다가 되돌아간
친구녀석의
시신이 어느 야산에서 발견되었다는 통보를 받고도
직장의 채용시험에서 우리나라의 국시를 반공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던
청년은 속으로 속으로만 꺼이꺼이 울면서
논산으로 달리는 입영열차에 몸을 실어야만 했습니다. 

 

칠팔월의 땡볕 밑에서
김일성을 때려잡고 공산당을 쳐부수자고 악을 쓰며 뒹굴다가
지금의 나보다도 더욱 나이 먹어 보이는 전역특명 받은 고참병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신고합니다’로 시작한
신참생활은 선임병들의 연애편지 대필로 하루를 마감하곤 했는데
어느 아침 구보 길의 교통사고는
열다섯 달 만의 첫 휴가라는 달콤한 사탕을 먹어보지도 못한
나를
또 다시 여덟 달 동안의 병상으로 밀어 넣었지만
그러나 다시 일어나 달리기는 계속하여야 했습니다. 

 

콩나물을 기르고 두부를 만들고 고춧가루를 빻으며
소채류와 고기류 등을 납품받아 경상북도 병력의 부식을 책임진 부대의
육군병장 김 병장, 고참병장 김 병장은
숨겨놓은 금송아지 한마리도 없는 고향의 집을 그리며
군화 뒤축이 빠진 줄도 모르고 이 공장 저 공장을 뛰어다니면서
모자챙에 그려 넣은 79년 3월의 달력의 숫자 하루하루를 지우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두렵고도 먼 길이 있었습니다. 

 

1년여 간을 독학하여 응시한 시험장에서
‘이 고사장에서 1명이 합격하던지 1명도 합격을 하지 못한다’는
필기시험감독관의 말과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젊은 응시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나를 질리게도 하였지만
육군병장 김 병장도 녹록하지 않다며 이를 앙다물며 버티고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어떡하겠느냐?’는 애간장 태운 면접관의 질문에
‘내년에 또 도전하겠다’는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일까요?
 

 

혈연없이, 학연없이, 또 지연도 없이 나이 먹어 시작한 직장생활이
6.29선언을 이끌어낸 함성을 함께하다가 수감되기도 하는 등
온갖 영욕의 부침 속에서
이제는 낡아져 가는 육신이지만
아직도 다 못 간 나의 그 길을 가기 위하여
한 밤에도 식지 않은 여름날의 열대야와 씨름하며 
오늘도 나는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나 봅니다.

 

  • ?
    무적 2008.07.18 22:51
    다친 허리를 2001년 여름에 수술했었는데
    올 여름에 다시 도져
    몇 날을 한의원에 다니면서 침을 맞고 우선해졌습니다.

    정말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하고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자신을 비우자!

    저는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실행해 질지는 의문입니다.
  • ?
    에고.... 2008.07.21 23:10
    마음속에 파르르 동요가 일어납니다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얘기라서....
    엣시요~!!
    여그 내마음을 담은  시원한 냉커피 한잔 놓고 갑니다
    속이 얼얼 하도록 쭈~욱 드리키시고.
    아자~! 아자!
    힘을 내시요! 힘을~~ *^^*
    꼭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무적님 ! 홧팅!!

  • ?
    고산 2008.07.22 02:45
     

    回想(회상)




    호수위에 수련처럼 맑은 당신의 글밭에서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  바람에 나부낍니다.


    깊은 밤!


    추억의 물고를 방류하는 밤이면


    수평선 너머 빈곤의 땅


    모래밭에 숨겨놓은 슬픈 이야기들이


    파도처럼 밀어옵니다.




    김병장님! 가난은 위대한 스승입니다


    해풍에 저린 몰골로 빡빡머리 소년은


    날마다 책보를 등에 메고 십리 길을 걸었습니다.


    장날이면 풀 빵 파는 냄새


    소년은 군침을 삼키며 바라봅니다.


    배고프고 허지 졌던 그 시절


    우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무적님! 당신의 글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진실한 고백은 타인의 가슴에 울림으로 남습니다.


    꾸임이 없는 글체에서 순수한 영혼을 봅니다.


    언제나 열정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삶을 보면서


    못난 선배 많은걸 배웁니다.


    그리고 하고자하는 일에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ㅡ남산 명상센터에서ㅡ







  • ?
    하늘바람 2008.07.22 15:23
    에고! 자서전 일세 그려.
    발자국도 안 찍으면 매정타 할 터
    자네가 반기던 말던 한마디 놓고 가니
    내가 빛고을에 못간 건 중국에 출타 중이었기 때문임을 알리네.
    건강 잘 챙기시게.
  • ?
    무적 2008.07.22 17:55
    이제야 조금 시간을 지배할 수 있어 찾아 뵙니다.

    고산선배님!

    일전에 약속했던 바둑 한 수 둬야죠!

    만날 두어도 더욱 어렵고 알 수 없는 바둑이지만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하니 안 둘 수도 없는 것!

    준이!
    중국여행은 보람있었겠지?

    하기야 자네처럼 심미안을 가지고 있으면
    안 가고도 느낄 수 있겠지만 말일세!
  • ?
    하늘바람 2008.07.23 15:41
    하하하 내가 뭐 신이라도 되는줄 아는 감.
    비행기 타다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린다 하더이.
    혹여 자네라면 또 모를까.

    건강+ 행복+ 기쁨 넘치시길...
  • ?
    자미원 2008.07.24 01:06
    볼때마다 즐거운 아우님들이 한 데 모이니 인사히기도 좋네.
    무적님의 글을 읽고는 손수건을 흥건히 적셨답니다.
    하늘바람님은 중국 여행길 즐거우셨겠지요?
    고산님은 3기방의 죽산님과 쌍벽.....^^

    나도 이번주말에 고향바다에 가 볼수 있으려나...
    바다라면 겨울에 배타고 나가 해우 뜯는 일이나, 
    썰물 나간 감풀밭에서 반지라기 파기,
    갯가 작살밭에서 굴을 까는 일, 
    여름 밤 바닷가 모래밭에서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걸었던 일..
    그런 일 말고, 밤 바다 물결위에 배를 타고,
    별이 가득한 하늘을 쳐다보며 밤을 새우는 일이라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냥 순수한 뱃놀이로서의 바다 !
    조금이라 물살은 잔잔하겠고,
    쳐다 본지가 50년도  된 듯싶은
     은하수의 견우 직녀성을다시 볼 수도 있을텐데..... 

    희망사항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상상만해도 벌써
    ㅡ 나는 거기에 가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 ?
    하늘바람 2008.07.24 10:13
    낭만이 출렁이는 자미원 님의 바닷가 이야기가 멋져부러요.
    조근조근 짚는 이야기가 잘근 잘근 씹히는 맛으로
    영혼에 촉촉히 습한 기운을 더합니다요.
    밤바다와 별과 밤 새우는 이야기들.
    정녕 또 하나의 바다 이야기가 펼쳐져 가슴에 차 오를 것 같씁니다.

    늘상 건강하시고 늘 행복의 나래를 펴시기 바랍니다.
  • ?
    무적 2008.07.24 11:19

    누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하늘바람님의 고향 여행담에
    귀한 단어(민낯: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의 얼굴)가 있어 반가왔는데
    역시 누님의 글귀에도 제가 좋아하는 귀한 단어인
    감풀(썰물 때에만 드러나 보이는 넓은 모래벌판)이 있어
    지금도 계속 모으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한
    애착을 더더욱 느끼게 하군요.


    발행되자마자 품절이 되어 구할 수 없었던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을
    달그림자님에게서 빌려와 여름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곧,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
    금당 2008.07.24 22:31
    글이란 ?
    사람을 감동 시킨 큰 힘이 있다는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너무나 멀었던..그러나 꼭 가야만 할길...
    한편의 영화를 본듯하여 가슴 깊은곳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줄 한줄 읽어가면서 가슴이 아려옴은
    같은 고향을 둔 정이 있어서 일까요
    무적 선배님!
    살아오면서 시련과 고통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 얻어낸 보화는 더욱 빛이나고 찬란 하게 보입니다.

    아픈 허리가 빨리 완쾌 되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가야할길 힘내시라고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 ?
    무적 2008.07.26 07:03

    금당댁의 글을 볼 때마다
    내 귀는 해조음을 듣곤 합니다.
    또 내 코는 짭조름한 바닷내음을 맡읍니다.

    친구 동생이었다는 것,
    그리고 한 번 자리를 같이 하였다는
    그 인연의 끈으로 말입니다.

    이 곳 컴에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기에
    오늘은 아래의 글귀로 양식을 삼을까 합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에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이는 근본을 잊지 않음을 비유한 말입니다.
    넓게는 국가와 민족, 가깝게는 부모와 고향,
    일상생활에서는 문자 그대로 식수원(食水源),
    농사짓는 농부의 마음,
    그리고 제일 중요한 돈의 근원 등등.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큰 혜택을 베풀기에
    그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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