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시골에서는 시간 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추어 주로 일상행활이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울 엄마는 나를 낳은 시각을 해가 이 만큼 남은 때 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모가리똥에서 내찌께 넘어가는 저능선에서 이만큼 엄지와 검지 사이를
벌리면서 떨어진 시간이라 하였다.
근게 그게 몇시요하면,
그게 그러니까 쌀 뜬물 씻어내는 시간이라 하였다.
참 신기한 것은 그래도 그 시간이 대부분 잘 맞아 떨진다는 것이다.
한 겨울에 건장에다 해우를 다 널고서는 아부지는 어김없이
집아래 신작로로 내려가서 바닷물을 보시고는
"오늘은 조금이니까 한 숫깔 뜨고가도 되것네!"하였다.
그런데 이게 잘 안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정리 도선은 오전 9시에 출발을 하는 데 간혹 이 방법으로 하다가
몇 번 배를 놓쳐서 신평 배로 간적이 있었다.
또 다른 경우는 버스가 생기고 나서는 이 방법이 점점 통하지를 않게되서
시계를 꼭 보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
벼 가실을 마치면
물이 잘 빠진 네모 난 논은 우리들의 축구장이었고
물을 가두어 둔 논은 우리들의 아이스 링크 였다
늦 가을 그 마른 논에서 우린 실컷 공놀이를 하곤 했는데 대부분은 축구였다.
그리고 나는 해지기 전 그러니까 해가 이 만큼 남아 있을 때까지
집에 돌아가야 했었다.
그러나 놀다보면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놀다보면 해는 이미 산을 넘기었고,
바짓가랭이는 온통 흙 범벅에 윗도리 아랫도리 할 것 없이
지푸라기, 먼지들이 호주머니 가득 담아서 집에 돌아가곤 했으니,
어김없이 아부지의 매가 기다리고 있었고,
매맛을 땐 안그런다고 그랬다가 그 다음날이 되면 다까먹고 또 가서 놀았다.
겨울이 오면
이 논 저 논 아니면 이 둠벙 저 둠벙을 찾아다니며
얼음 썰매를 탈 곳을 찾아 다녔다. 사실 멀리 찾아 다닐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다 통해 있었으니까.
올해는 얼음이 얼면 누구네 논으로 가면 될 지 미리 정보교환이 되 있어으니까.
당시에는 넙적한 판자에 소나무 두 동아리를 밑에다 못으로 박고
그 동그란 소나무에 결따라 흠을 내서 철사를 앞에서 뒤로 연결하여
고정시켰다.
작대기(폴,pole)는 긴 소나무에 긴 못을 머리를 잘라내고
정지에 가서 불에 데운 다음에 소나무에 박으면 지지직 나무타는 냄새를 풍기며 박히었다.
그 때 선식이 후식이 쌍동이 형제의 정지는 우리의 아지트 였는 데 그것을 발견한
아부지는 한 동안 그 집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이 썰매는 견고했고
이 위에 앚아 무릅을 꿇고 작대기로 슬슬밀면 잘 나갔다.
그러나, 벼를 자를 때 너무 높게 잘라 남은 밑둥은 우리에게
항상 방해가 되었다. 거기에 걸려서 잘 넘어지곤 했는데, 한 번 넘어지면 아무 흔적이 없었던 때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무릅에 상처가 나기도 했었다.
어떤 날은 얼음이 너무 야찹게 얼었거나, 아니면 해가 뜨면서 얼음이
녹아 금이 여기저기 쩍 쩍 가드니만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할 수 없이 물에 흠벅 젖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논은 깊이가 낮아 옷만 버리고 말지만 둠벙에 빠질때는 아찔 하기도 했다.
한 번 당한 후 부터는 겁시나 그 담부턴 둡벙은 가지 않았다.
맨하탄의 51가(6- 5th )의 록펠러 센터엔 해마다 10층 건물 높이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그 아래엔 아이스 링크가 만들어 진다. 주변 둘레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링크 주변에는 팬시한 식당의 Table들이 있다.
그리고 서쪽 벽면에는 날아가는 천사의 조각이 있고,
그 아래에 분수가 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은 항상 그 주변에 모여 구경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스케이트를 탄다.
환한 조명아래에서.
밤이면 더 멋있게 보인다.
그것을 보며 난 어렸을 적 논에서 탔던 썰매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그때가 더 재밌었는데..."
..............
..............
금산에서는 눈이 참 귀하다. 우리집 개 백구가 제일 눈을 좋아하고,
그 다음이 나.
눈이 안온다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우리들 데 여섯명은은 현용이네 뫼뚱으로 갔다. 큰 소나무를 썰어서 만든 세바쿠 자전거를 들고 말이다.
묘의 위에서 아래까진 6미터정도가 되었지만 어설프게 만들어진 세바쿠 자전거는
기껏 1-2미터 굴러가고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굴렀다.
그래도 그 땐 그게 그리 재밌었고, 어떻게 하면 바쿠를 더 잘 구르게 할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 서부의 Rocky Mountains은 높이가 10000 feet가 넘는 산이 많았다. 미국서 첫직장 이었는데
사장이 스키광이다. 매주 목요일은 4:30PM이면 일을 마치고 산으로 향하곤 했다. 밤 6시까지 도착하여
스키장 문닫을 시간인 9:30까지 타면 중간 난이도 Course를 4-5번은 탈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다리가 뻑쩍지근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헨용이네 뫼뚱에서 탄 그 스키아닌 스키가 더 재밌었던 거 같다.
그 때는 힘들지도 않았고...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추어 주로 일상행활이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울 엄마는 나를 낳은 시각을 해가 이 만큼 남은 때 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모가리똥에서 내찌께 넘어가는 저능선에서 이만큼 엄지와 검지 사이를
벌리면서 떨어진 시간이라 하였다.
근게 그게 몇시요하면,
그게 그러니까 쌀 뜬물 씻어내는 시간이라 하였다.
참 신기한 것은 그래도 그 시간이 대부분 잘 맞아 떨진다는 것이다.
한 겨울에 건장에다 해우를 다 널고서는 아부지는 어김없이
집아래 신작로로 내려가서 바닷물을 보시고는
"오늘은 조금이니까 한 숫깔 뜨고가도 되것네!"하였다.
그런데 이게 잘 안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정리 도선은 오전 9시에 출발을 하는 데 간혹 이 방법으로 하다가
몇 번 배를 놓쳐서 신평 배로 간적이 있었다.
또 다른 경우는 버스가 생기고 나서는 이 방법이 점점 통하지를 않게되서
시계를 꼭 보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
벼 가실을 마치면
물이 잘 빠진 네모 난 논은 우리들의 축구장이었고
물을 가두어 둔 논은 우리들의 아이스 링크 였다
늦 가을 그 마른 논에서 우린 실컷 공놀이를 하곤 했는데 대부분은 축구였다.
그리고 나는 해지기 전 그러니까 해가 이 만큼 남아 있을 때까지
집에 돌아가야 했었다.
그러나 놀다보면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놀다보면 해는 이미 산을 넘기었고,
바짓가랭이는 온통 흙 범벅에 윗도리 아랫도리 할 것 없이
지푸라기, 먼지들이 호주머니 가득 담아서 집에 돌아가곤 했으니,
어김없이 아부지의 매가 기다리고 있었고,
매맛을 땐 안그런다고 그랬다가 그 다음날이 되면 다까먹고 또 가서 놀았다.
겨울이 오면
이 논 저 논 아니면 이 둠벙 저 둠벙을 찾아다니며
얼음 썰매를 탈 곳을 찾아 다녔다. 사실 멀리 찾아 다닐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다 통해 있었으니까.
올해는 얼음이 얼면 누구네 논으로 가면 될 지 미리 정보교환이 되 있어으니까.
당시에는 넙적한 판자에 소나무 두 동아리를 밑에다 못으로 박고
그 동그란 소나무에 결따라 흠을 내서 철사를 앞에서 뒤로 연결하여
고정시켰다.
작대기(폴,pole)는 긴 소나무에 긴 못을 머리를 잘라내고
정지에 가서 불에 데운 다음에 소나무에 박으면 지지직 나무타는 냄새를 풍기며 박히었다.
그 때 선식이 후식이 쌍동이 형제의 정지는 우리의 아지트 였는 데 그것을 발견한
아부지는 한 동안 그 집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이 썰매는 견고했고
이 위에 앚아 무릅을 꿇고 작대기로 슬슬밀면 잘 나갔다.
그러나, 벼를 자를 때 너무 높게 잘라 남은 밑둥은 우리에게
항상 방해가 되었다. 거기에 걸려서 잘 넘어지곤 했는데, 한 번 넘어지면 아무 흔적이 없었던 때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무릅에 상처가 나기도 했었다.
어떤 날은 얼음이 너무 야찹게 얼었거나, 아니면 해가 뜨면서 얼음이
녹아 금이 여기저기 쩍 쩍 가드니만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할 수 없이 물에 흠벅 젖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논은 깊이가 낮아 옷만 버리고 말지만 둠벙에 빠질때는 아찔 하기도 했다.
한 번 당한 후 부터는 겁시나 그 담부턴 둡벙은 가지 않았다.
맨하탄의 51가(6- 5th )의 록펠러 센터엔 해마다 10층 건물 높이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그 아래엔 아이스 링크가 만들어 진다. 주변 둘레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링크 주변에는 팬시한 식당의 Table들이 있다.
그리고 서쪽 벽면에는 날아가는 천사의 조각이 있고,
그 아래에 분수가 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은 항상 그 주변에 모여 구경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스케이트를 탄다.
환한 조명아래에서.
밤이면 더 멋있게 보인다.
그것을 보며 난 어렸을 적 논에서 탔던 썰매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그때가 더 재밌었는데..."
..............
..............
금산에서는 눈이 참 귀하다. 우리집 개 백구가 제일 눈을 좋아하고,
그 다음이 나.
눈이 안온다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우리들 데 여섯명은은 현용이네 뫼뚱으로 갔다. 큰 소나무를 썰어서 만든 세바쿠 자전거를 들고 말이다.
묘의 위에서 아래까진 6미터정도가 되었지만 어설프게 만들어진 세바쿠 자전거는
기껏 1-2미터 굴러가고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굴렀다.
그래도 그 땐 그게 그리 재밌었고, 어떻게 하면 바쿠를 더 잘 구르게 할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 서부의 Rocky Mountains은 높이가 10000 feet가 넘는 산이 많았다. 미국서 첫직장 이었는데
사장이 스키광이다. 매주 목요일은 4:30PM이면 일을 마치고 산으로 향하곤 했다. 밤 6시까지 도착하여
스키장 문닫을 시간인 9:30까지 타면 중간 난이도 Course를 4-5번은 탈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다리가 뻑쩍지근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헨용이네 뫼뚱에서 탄 그 스키아닌 스키가 더 재밌었던 거 같다.
그 때는 힘들지도 않았고...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
양현친구!!
근데 난 왜
겨울에 썰매 탄 기억이 없을까
기억이 없는게 아니고
논이든, 둠벙이든 썰매는 한번도 못 타봤네
이런 추억상자는 내가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