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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2005.02.09 04:54
"전라도 城=고흥 금산 목장성"


전라도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금산 목장성. 이 성은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어전리와 석정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일명 ‘절이도 목장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의 이름은 조선시대 ‘거금도’의 옛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 사진/ 한 석(사진작가·고흥군청 문화관광과)
‘형극의 땅’소록도를 앞에 둔 고흥 녹동항에서 금산(錦山·거금도)으로 가는 철선(鐵船)에 올랐다. 뱃머리에 부서지는 초겨울의 파도소리가 귓바퀴를 파고 들었다. 마치 현악기의 선율을 감상이라도 하는 듯한 착각을 일게 했다. 경쾌했다. 간간히 살갛을 핥퀴고 돌아가는 바닷바람이 정겹기까지 했다. 조선 초 군마(軍馬) 사육장으로써 역사의 현장을 간직하고 있는 금산 목장성(牧場城·전라남도 기념물 제206호)을 찾아가는 답사자의 마음은 솜털처럼 가벼웠다. 철선은 20여분 만에 금산항에 닿았다. 초행 답사자를 위해 ‘절이도 토박이’신광주씨(57·고흥군의회 의장)와 신상신 금산면장이 길잡이로 나서 목장성을 안내했다. 성(城)을 찾아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었다. 돌덩이에 걸려 뒤우뚱거리는 취재차량이 몇 번 멈춰서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 城 연혁 및 위치

목장성은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의 어전리와 석정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속칭 ‘절이도 목장성’이라고도 불리는 성명(城名)은 조선시대 ‘거금도’의 옛 지명에서 연유된 것이다.

목장성은 거금도의 등뼈 역할을 하고 있는 적대봉(해발 592.2m)과 용두봉(해발 418.6m)의 중간 계곡을 형성하는 부분과 두 봉우리가 연결되는 능선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고, 섬을 중간으로 나눈 남북방향으로 축성됐다. 체성은 완만한 구릉이 형성되어 있는 부분의 서쪽 사면 끝자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해안선까지 이어진다.

이 목장성은 ‘조선왕조실록’ 세조 12년(1466) 2월 기축(17일) 조에 “전라도의 점마별감 박식이 아뢰기를, ‘흥양 절이도는 주위가 270리인데, 물과 풀이 모두 풍족하여 말 8백여 필을 방목할 수 있다. 청컨데 회령포, 금갑도, 돌산, 남도포, 어란포 등 여러 포구의 선군으로서 목장을 수축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또 ‘조선왕조실록’성종 1년(1470) 1월 계미(4일) 조에는 “사복시 제조가 각지에서 기르는 마소(牛馬)의 원래 숫자와 현재 잃어버린 숫자를 알외다…. 흥양의 도양곶이에는 본래 방목한 말이 666두였는데 고실이 136두, 유실이 5두이며, 절이도에는 본래 방목한 말이 364두였다”라고 적고있다.

이와함께 ‘시증동국여지승람’ 제40권 흥양현 산천조엔 “절이도는 현의 남쪽 30리에 있으니, 둘레가 1백리요, 목장이 있다”고 나타나 있으며, ‘호남읍지’(1895년)의 흥양목장지사례에는 “절이도는 동서 30리이고 남북 10리이며 둘레는 100리이다. 관문으로부터 거리는 녹도진까지 10리이고 수로(水路)로 30리이다. 민호는 180호이며 방목을 한다”는 기록을 통해서 목장성의 연혁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절이도 목장성은 조선 세조 12년(1466) 전라도 점마별감 박식의 주청에 의하여 물과 풀이 모두 풍족해 약 800여 필의 말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실제로 1470년에는 364필의 말을 방목하는 등 절이도 목장은 조선 전기에 중요한 목장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 城 규모 및 현상

이 성은 중간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축조된 차단성 즉, 장성(長城)이며 내외 협측의 석축성이다. 체성의 길이는 섬 북쪽의 유적이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제외 하고도 4천652m에 이른다. 너비는 하부 3.2m, 상부는 1.4m이다.

체성의 축조 방법은 내벽의 경우 먼저 바닥에 잡석을 깔고 그 위로 너비 30~80cm, 두께 20~60cm 크기의 부정형 할석으로 80cm까지는 성돌의 열이 맞지 않게 막쌓기를 하였다. 그 위로 너비 30~50cm, 두께 15~30cm의 판석형 석재를 사용하여 열을 맞추었다.

그리고 비교적 성돌의 정연한 면을 바깥쪽으로 하여 성벽의 전체 면이 고르게 축조하였다.

이에 비해 외벽은 3단의 계단식으로 축성되었다. 1단은 수직으로 80cm 올라가서 내측으로 80cm 들어간다. 2단은 80cm 올라가서 내측으로 40cm 들어가고, 3단은 다시 120cm 올라간다.

조선시대 수 백마리의 군마(軍馬)들이 뛰어 놀았을 금산 목장성. 지금은 발길 조차 뜸해 잡초에 묻혀있다. 전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목장성은 조선시대 초기에 축성된 흔치 않은 성으로써 그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2004년 12월 01일 00시 00분 입력
글/ 김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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