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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8월 군대 해산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들이 봉기했다. 일본군의 주요 공격 목표는 해산군인과 이들과 결합한 의병세력이었다. 1907년부터 1908년까지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를 중심으로 의병과 일본군 간의 전투가 치열했다. 중부지역의 의병 활동이 점차 사그라들자 1909년부터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전투 횟수가 급증한다. 특히 전라남도에서만 466회의 전투가 발생했고, 2월과 3월에 전투가 집중됐다.

1909년 4월 7일 순천경찰서 관내 돌산군 손죽도(巽竹島)에 정체불명의 무리가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37명으로 청색, 적색, 백색의 한인복(韓人服)을 입고 엽총 25정과 권총 10정 그리고 한도(韓刀)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어류를 구입하기 위해 정박 중이던 일본어선을 습격했다. 일본인 1명을 사살하고 소지금 150원(圓)을 약탈한 후 어구와 어망 등을 바다에 내다버렸다. 나머지 일본인 2명은 전마선(傳馬船)을 타고 달아났다.

4월 10일 일본인 5명은 거문도 일대의 황무지를 조사하기 위해 부산에서 범선(帆船)을 타고 출발해 16일 거문도(巨文島)에 도착했다. 17일 거문도에 상륙해 두세 곳을 둘러본 후 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때 약 40명의 무리가 총을 쏘며 습격해왔다. 일본인들이 탄 범선이 제주도 방면으로 달아나자, 이들은 배 3척으로 추격하며 8~9회 총격을 가했다.

4월 14일 오후 2시경 완도군 평일도(平日島) 연안에 일본어선 1척이 정박하자 해변에 있던 무리 14명이 즉시 사격을 가해왔다. 4월 16일 오후 11시경 무리 30명이 완도군 노화도(蘆花島)에 나타나 주막 주인을 협박하고 16원(圓) 강탈한 후 사라졌다. 4월 17일 오후 4시경 상인으로 위장한 2명이 완도군 생일도(生日島)에 나타나 대장간에서 총기를 수리하고 사라졌다.

정체불명의 무리는 해상에서 활동하던 의병들이었다. 일본은 이들을 비도(匪徒)나 폭도(暴徒) 혹은 해적(海賊)이라 표현했다. 1909년 4월 한 달 동안 일본이 전라남도에서 의병에게 입은 피해와 상황들이 정리되었다. 총 124건이 보고되었다. 이 중에서 해상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일본인에 대한 어선 습격, 어선 징발, 금품 강탈 등이었다.

4월 24일 밤 무안군 지도(智島)에서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졌다. 전라남도 경찰부장(警察部長) 무라카미 노리사다(村上則貞)가 지도의 순사주재소를 순시하고 숙박 중이었다. 의병 약 50명이 순사주재소를 삼면으로 포위하고 총격을 가해왔다. 전라남도 경찰부장의 수행 순사와 주재소 순사가 대응하면서 30분간 총격전이 벌어졌다. 교전 중에 의병이 일본인 주택에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 의병들은 다시 배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의병들이 지도 총격전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전라남도 경찰부장 무라카미의 순시 동선을 파악하고 급습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습격을 당한 무라카미 노리사다는 내부(內部) 경무국장(警務局長) 마츠이 시게루(松井茂)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해상폭도 토벌 편성의 건’이었다. 해상 의병을 ‘토벌’하기 위해 돌산 수비대의 고바야시(小林) 군조(軍曹)를 지휘관으로 삼고 병사 약간 명과 통역 1명을 붙여 증기선 우메마루(梅丸)호에 승선시켜, 4월 24일 ‘해상폭도 토벌대’를 편성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해상폭도 토벌대’는 돌산군 나로도(羅老島)를 기점으로 해서 동쪽으로 여수 광양만까지, 서쪽으로 거금도(居金島)와 거문도 방면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의병들의 주 활동 무대가 현재의 고흥군과 여수시 그리고 거문도 일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5월 순천경찰서는 거문도 돌산군의 수비대와 함께 의병들의 동향을 정탐했다. 주민들은 화승총 20정과 군도(軍刀) 2본을 소지한 의병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우리 단체는 3척의 배로 행동하는 자인데, 1척의 승선 인원은 15, 16명 또는 20여 명이다. 흥양, 돌산, 남해, 완도 여러 섬의 해안을 밀항하고, 일본인을 동해쪽으로 방출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로 동포인에게는 피해를 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들의 통과를 일본인에게 말하는 것을 금한다.”

이 단체는 3척의 배를 타고 활동하며, 총 인원이 30~60명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해상폭도 토벌대’는 정체불명의 이 단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6월 장흥경찰서장은 경무국장 마츠이 시게루에게 5월의 폭도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올린다. 강진 순사주재소가 장흥경찰서장에게 보고한 것을 정리하여 다시 보고한 것이다. 강진 순사주재소의 보고에 따르면, 5월 중 ‘폭도’ 활동은 6건이었는데 5건이 해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5월 20일 각자 화승총을 소지한 30명이 완도군 고금도(古今島)에 상륙하여 식사를 하고 강진군 방면으로 이동했다. 5월 23일 각자 화승총을 소지한 약 30명이 완도군 신지도(薪智島)에 상륙하여 일본인의 존재 여부를 묻고 없다고 하자 종적을 감추었다. 5월 25일 3명이 완도군 고금도에 왔다가 곧바로 떠나버렸다. 5월 30일 각자 화승총을 소지한 18명이 완도군 고금도에 상륙하여 아침식사를 한 후 곧 조약도(助藥島) 방향으로 떠났다. 5월 31일 각자 화승총을 소지한 30명이 완도군 신지도(薪智島)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1900년대_초반_해상의병_주요_활동지.jpg

 

화승총을 소지한 약 30명의 무리가 완도 일대의 여러 섬들에 출현했다 사라졌다. 각자 무기를 소지하고 일본인의 행방을 물은 점에서 해상 의병이라 할 수 있다. 앞서 고흥과 여수 그리고 거문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바로 그 단체였던 것이다. 이들은 나로도를 중심으로 일본 수비대의 정찰이 강화되자, 그 거점을 서쪽의 완도 일대로 옮겨 활동했던 것이다.


이후 6월부터 8월까지 30~40명 단위의 해상 의병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9월 3일 다시 이 단체로 추정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의병 34명이 돌산군 거금도 방향에서 한선(韓船)으로 흥양군 도화면에 상륙하여 구암리를 습격했다. 이에 일본은 순사 3명과 수비병 12명으로 ‘토벌대’를 편성하였고 이들은 오후 9시에 도착했다. 하지만 의병 34명은 이미 3시간 전에 도화면 동수리 방향으로 사라진 후였다.

다음 날 ‘토벌대’가 복귀하는 도중에 주민으로부터 밀고가 있었다. 도화면 구암리를 습격한 우두머리는 흥양군 포항면 해창(海倉)에 거주하는 김덕화(金德化)의 아들이라고 했다. 이름은 미상이며 나이는 29세라고 했다. 우두머리는 보성군과 흥양군에 부하 60~70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흥양군, 장흥군, 보성군의 중간에 위치한 보성군 금양도(金兩島)가 각 방면에서 출몰하는 ‘폭도’의 근거지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일본은 1909년 9월 1월부터 약 2개월에 걸쳐 ‘남한대토벌작전’을 실시했다. 한국임시파견대 사령부의 계획에 따라 전라도의 의병들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목적이었다. 보병 2개 연대와 수뢰정 4척으로 구성된 제11정대(艇隊)를 투입하여, 전라도 일대를 이잡듯이 뒤져 의병을 ‘토벌’하고자 했다.

도서지역에 대한 수색과 정찰도 진행되었지만, 해상 의병대의 우두머리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단체의 이름도 우두머리의 이름도 알 수 없었다. 일본측 보고서에는 ‘수괴불명(首魁不明)’으로 기록되었다. 29세의 해상 의병장은 화승총으로 무장한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3척의 배로 남해안을 종횡무진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출처 :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8031309354276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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