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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용2015.01.08 11:43

제가 쓰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에  '사금파리'라는 제목으로 올릴 글을

여기에다 실어 봅니다.


사금파리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어렸을 적 소꿉놀이!

엄마인 너는 하얀 사금파리 밥그릇과 깨어진 오지그릇 반찬그릇에 모래알로 지은 밥과 잡풀을 짓이겨 만든 반찬을 담아 나에게 먹으라고 권했었지.

남의 눈에는 단사표음(簞食瓢飮)에 불과하겠지만 오직 나만을 위하여 네가 정성껏 만든 음식이기에 나는 다른 어떤 음식보다 더 맛있게 먹었었지!

세월이 흘러 이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아빠 되고 엄마 되었기에 다시는 그 음식을 먹어볼 수는 없겠지만 아직도 그대를 생각하면 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아마 그때 우리가 싹 틔었던 소중한 사랑 때문일 거야!

 

이러한 사금파리에 대하여 소년시절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반추해 본다.

1968.

섬 소년인 나도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어 광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던 그 해에 작은 누나가 고등학교 3학년, 형이 중학교 3학년이었다.

가난한 시골살림에 자식들을 셋이나 광주에 유학을 시키시는 부보님의 고통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도회지 학교로의 진학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저 멀리 천관산(장흥 소재)을 바라보며 저 쪽 방향으로 가면 누나와 형이 학교에 다니는 광주라는 도시가 있을 것인데!’라며 동경했던 광주에의 유학이고 부모님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어린 소년에 불과하였으므로……

 

그렇게 시작된 도회지의 생활이었지만 즐거움도 잠시였다.

가난한 시골의 소년은 자기가 그곳에서 학교공부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평일은 학교에 가야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아무 갈 데가 없는 우리 네 남매(큰 누나가 우리의 밥을 해 주기위해 같이 있었음)가 보내기엔 그 조그마한 자취방은 턱없이 작았다.

그러한 와중에 형이 제안한 것이 바둑이었는데 당시 나는 바둑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형은 내게 종이에다 연필로 몇 줄 그어서 만든 바둑판을 놓고 바둑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강의(?)를 하는데 어디 그게 머리에 들어오겠는가!

그렇게 명강사의 강의를 몇 차례 반복하여 수강하다가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집에 온 우리는 바둑판과 바둑돌을 우리가 손수 만들기로 하였다. 바둑판은 종이를 몇 겹 오려붙여서, 바둑돌은 사금파리와 깨어진 오지그릇 조각들을 깨어서!

당시의 바닷가에는 사금파리와 깨어진 오지그릇 조각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는데 형은 사금파리로 흰 돌 180개를, 나는 오지그릇 조각으로 검은 돌 181개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마들어진 바둑판과 바둑알로 나의 생애 첫 바둑대국이 시작되었다.

비록 21점 접바둑(미리 바둑판의 천원과 화점을 위시하여 곳곳에다 21개의 검은 돌을 배치하고 두는 바둑)이었지만 이게 첫 대국이란 것에 의미가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역시 첫 대국은 여지없는 나의 패배였다.

판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나의 병사(흑돌)들은 상대의 포로가 되거나 죽어나가더니 판이 끝나고 나니 살아남은 병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전멸이었다.

아무리 21점을 미리 놓고 두는 접바둑이지만 상대의 돌을 둘러쌓아야만 잡는다는 기초지식 외에는 바둑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오기로 다시 몇 번이나 반복하여 대국하였지만 그때마다 병법을 모르는 지휘자를 원망하며 죽어나가는 나의 가련한 병사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다 못한 나는 급기야 바둑 안 배워!’하면서 문을 박차고 나온 나의 첫 바둑 대국은 그렇게 막을 내렸던 것이다.

 

이런 수모를 당하며 차츰 바둑에 눈을 뜨게 되니 이제 천정의 사각무늬가 바둑판으로 보이고 책 속의 글씨가 바둑알로 보이기 시작했다.

정석이 무엇이고, 축이 무엇이고, 장문이 무엇이고를 하나하나 익혀나가면서 처음의 21점 접바둑이 13점으로 내려가고, 다시 9점과 6점을 거쳐 4점으로 내려가기까지 걸린 시간이 2년여.

그러나 나의 오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결국 다시 1년이 지나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는 결국 호선(맞바둑)이 되었다가 군대를 제대한 후부터는 내가 상수가 되었는데 그 후부터는 형님께서 대국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형님과는 바둑을 둘 기회가 많지 않다.

 

현재는 회원이 15~6여명 되는 조그마한 기우회의 회장을 맡아 전회원이 함께 모이는 정기모임은 1년에 두 번이고, 사정이 허락한 사람끼리 만나 수담을 나누는 임시회는 1년에 3~4회 정도여서 나는 주로 인터넷바둑(오로)을 즐기는데 급수는 오로에서 4단 정도이다.

 

사금파리 - 사기그릇의 깨어진 작은 조각. 기편(器片)도편(陶片).

단사표음(簞食瓢飮) - 대나무로 만든 밥그릇에 담은 밥과 표주박에 든 물 이라는 뜻으로,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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