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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동정(桐井) 원래는 산골 안에 금(金)이 매장된 마을이 있어 古羅金(고라금)이라 부르다가 마을 앞 연못가에 오동나무가 있고 그 밑에 있는 바위에 솟는 샘이 있다하여 동정이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동정, 신정, 성치가 한 마을이였는데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성치, 신정마을로 분리되었다.
2007.06.28 12:25

인연

조회 수 5971 추천 수 0 댓글 1

오늘 아침 동정향우 최진남 과장님을 만나 자동차 전반에 대하여 써비스를 받고 출근을 하였다.
사람의 인연은 소중한 것인가 보다.
한 마을에서 태어나 선후배가 되고  또한 사돈이 되기도한다.
또는 부부의 인연을 맺기도 한다.
이 소중한 인연 잘 간직되었으면 한다.
좋은 인연으로......
아주 오랫동안...........

...........................

타계하신지 얼마 안되신 고 피천득 성생님의 인연이 생각난다...
다시 읽어보는 것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고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라는 수필에 영화 '쉘부르의 우산'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 영화 줄거리 또한 흥미롭습니다.  

              인  연

                                              피천득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수녀님과 김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三浦)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芝區白金)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이'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피이'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聖心) 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하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델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 같이. 그때 그는 성심 여학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졌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꼬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꼬와 나는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제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아시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二世)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二世)와 결혼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進駐軍)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
 

{작품 속의 명작 셀부르의 우산에 대하여}

영상미와 음악이 훌륭히 균형있게  일체가 된 프랑스 작품.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함.



줄거리

영국 해협에 면해 있는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 도시 셰르브르, 우산 가게의 딸 주느비에브는 얼마 멀지 않은 주유소에서 근무하는 자동차 수리공 기와 사랑하는 사이다. 우산 가게 주인 에므리 부인은 그들이 아직 젊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11월이 되자 기에게 갑작스런 소집 영장이 나왔다. 알제리 전투에 참가하라는 명령이다. 출정 전날 밤,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주느비에브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기에게 바친다.



전쟁터로 떠난 기로부터 단 1통의 편지를 받았을 뿐, 소식이 없어 불안한 가운데 주느비에브의 몸 안에는 기와의 사랑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딸아이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에므리 부인은 세금 때문에 곤란을 겪다가, 애지중지 아끼던 진주 목걸이를 팔려고 보석상 주인 카사로를 찾아간다. 평소부터 주느비에브의 미모에 반한 카사르는 주느비에브를 아내로 맞고 싶다고 청혼을 하며, 주느비에브가 임신한 아기의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까지 한다. 주느비에브도 이제 소식이 끊긴 애인으로부터 친절한 카사르를 향해 차츰 마음이 움직여 간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카사르는 그녀와 아이를 극진한 사랑으로 대해 주며 행복한 세월이 흐른다.



주느비에브가 결혼한 지 9개월 후, 기는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온다. 그는 주느비에브의 결혼에 상심하지만, 마음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 마들렌과 결혼하여 아들까지 두고, 백모의 유산으로 주유소를 차린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주유소에 고급 승용차가 멎는다. 기름을 넣기 위해 들른 주느비에브는 주유소 주인이 된 기를 만난다. 격정에 싸인 그리움으로 두 사람은 한 동안 얼굴만 쳐다보다가 그녀는 옆에 태운 계집애를 가리키며 "당신을 닮았어요."라고 말한다. 두 모녀가 탄 승용차는 멀어져 간다..........


향우님들 모두 장마철에 건강하시길......................


  • ?
    남영현 2007.07.0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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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MBC에서 금와 피천득님의 다큐를 해주네요.
    참 고운 프로그램이였구 나레이션을  폭스멀더의 이규화씨와 김미숙씨가 해주어서
    더 좋았네요 피천득님은 그 연로하셨는데도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엄마라고 하시네요
    그의 아호처럼 거문고 타는 아이와 같은 맑은 심성으로 글을 쓰시니 엄마라는 단어가
    왜 이리 정감있게 들리던지

    평생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딸 서영씨가 태어나자 서영이라는 글을 많이 쓰셨는데요
    수필 인연에 보면 서영이에 대한 글이 많습니다.
    몇년전에 느낌표에서  김제동이 찾아갔을때 곰인형옆에 있는 안대의 정체를 묻자
    곰인형들도 밤에 자야한다고 곰인형에게 안대를 직접 씌워야 한다는 말씀에  평생 어린아이로
    사셨구나  생각되더군요.  어느 여학생의 잘못걸려온 전화에 젊음을 느끼고 그 전화에 감사해
    하는 모습들도 떠오르네요

    금와 피천득님을 보면서  이분 시인 천상병님과 왜 이리 닮아보이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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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천이란 시를 남기셨던 천상병시인  평생 이분도 어린아이같은 심성으로 시를 쓰시다가
    공안정권에 끌려가서 갖은 고초와 고문을 받고 결국 그 와중에 지병을 얻으셔서 돌아가셨는데요
    산에서 귀거하시다가 동료시인들이 천상병시인이 돌아가신지 알고  살아계시면서
    유고시집이 나왔던 것으로 유명하죠. 

    천상병 시인은 목순옥 여사님이 아내신데 그 목순옥 여사님이 운영하는 인사동의 귀천이라는
    찻집을 97년도인가요 한번 간적이 있었습니다. 5평도 안되어 보이고 테이블은 딱 두개인가 3개였던
    그곳에서 감귤차를 마시먼서 곁눈질로 목순옥 여사님을 봤는데 참 고우시더군요.

    두분의 모습이 오버랩되네요.  외모도 비슷하시구요.
    어린아이같은 맑은 심성에서 나오는 시들은 사람들의 심성을 맑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오늘밤 생각나네요.
    피천득님이 좋아했던 장미꽃과 함께   시.. 귀천을 놓아봅니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네이버에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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