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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문화 유적·유물 알기 - 적대봉 사화랑 봉화대

by 운영자 posted Aug 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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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대흥리 고인돌(高興大興里支石墓) ①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상하촌
시 대 청동기시대
지정사항
종 류 선사시대분묘(고인돌)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최성락외, 1991, <고흥지방의 선사유적·고분>, <<고흥군의 문화유적>>

금산 초등학교 내와 김남윤 씨 담장에 3기가 있다. 이보다 많은 수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길 확장 공사로 파괴되고 3기만 남아 있다.  

고흥 대흥리 고인돌(高興大興里支石墓) ②
소재지 전리남도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상하촌
시 대 청동기시대
지정사항
종 류 선사시대분묘(고인돌)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최몽룡, 1975, <<전남고고학지명표>> ;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최성락외, 1991, <고흥지방의 선사유적·고분>, <<고흥군의 문화유적>>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구릉 정상부 밭에 4기가 있다. 북동쪽 400m 지점에 석정 마을이 있고 주위는 모두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고흥 대흥리 고인돌(高興大興里支石墓) ③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상하촌
시 대 청동기시대
지정사항
종 류 선사시대분묘(고인돌)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최몽룡, 1975, <<전남고고학지명표>> ;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최성락외, 1991, <고흥지방의 선사유적·고분>, <<고흥군의 문화유적>>

상하촌 마을에서 석정 마을로 넘어가는 지점의 도로변에 14기가 있다. 북쪽으로 50m 지점에 한전 출장소가 있고 남쪽으로 200m 지점에 금산 초등학교가 있다.  

고흥 대흥리 고인돌(高興大興里支石墓) ④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상하촌
시 대 청동기시대
지정사항
종 류 선사시대분묘(고인돌)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김원룡·임효재, 1968, <<남해도서고고학>> ;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최성락외, 1991, <고흥지방의 선사유적·고분>, <<고흥군의 문화유적>>

금산 고등학교 입구 밭에 7기가 있다. 동쪽으로 한전 출장소가 있고 남동쪽으로 150m 지점에 ⑥군이 있다. 원래 8기 였으나 1기는 파괴되고 현재는 7기만 남아 있다. 군집 형태는 북동∼남서 2열이다.  

고흥 대흥리 고인돌(高興大興里支石墓) ⑤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중촌
시 대 청동기시대
지정사항
종 류 선사시대분묘(고인돌)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최성락외, 1991, <고흥지방의 선사유적·고분>, <<고흥군의 문화유적>>

경주 김씨 선산에 18기가 있다. 이 곳은 적태봉의 말단에 해당되는 곳에 구릉을 이루고있다. 2기는 담장 밑에 들어가 있으며 군집 형태는 북서∼남동으로 산재되어 있다.  

고흥 대흥리 고인돌(高興大興里支石墓) ⑥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중촌
시 대 청동기시대
지정사항
종 류 선사시대분묘(고인돌)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최성락외, 1991, <고흥지방의 선사유적·고분>, <<고흥군의 문화유적>>

 

고흥 대흥리 고인돌(高興大興里支石墓) ⑦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중촌
시 대 청동기시대
지정사항
종 류 선사시대분묘(고인돌)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최성락외, 1991, <고흥지방의 선사유적·고분>, <<고흥군의 문화유적>>

선종남 씨 소유 밭에 6기가 있다. 남동쪽으로 150m 지점에 중촌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에서 흘러 내린 물이 고인돌 바로 옆으로 흐른다. 군집 형태는 북서∼남동이며 타원형을 이룬다.  

고흥 어전리 고인돌(高興於田里支石墓) [ 돌아가기 ]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동촌
시 대 청동기시대
지정사항
종 류 선사시대분묘(고인돌)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최몽룡, 1977, <<고흥발포진성발굴조사보고서>> ;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최성락외, 1991, <고흥지방의 선사유적·고분>, <<고흥군의 문화유적>>

동촌 마을과 중촌 마을 남북 중간 구릉 상에 27기가 있다. 주위에 민 묘가 있고 일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동쪽으로 200m 지점에 다른 고인돌군이 있다. 군집 형태는 북서∼남동으로 흩어져 있다. 대표적인 고인돌은 315×120×40cm 크기로 상석 형태는 마름모형이고 장축 방향은 남동∼북서이며 지석은 1개가 보인다.  

사화랑 봉화대(沙火郞熢火臺)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석정리
시 대 조선시대
지정사항
종 류 봉수(봉화대)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배종무외, 1991, <고흥군의 관방유적>, <<고흥군의 문화유적>>

해발 592.5m의 적대봉 정상에 있다. 이 봉수지는 조선 중기에 신설된 6개 간봉 중 사화랑 봉수로 비정된다. 연대(煙臺)는 산 정상 부근의 암반 위에 축조된 원형 연대로 외면만을 치석한 장방형의 할석을 이용하여 쌓았다. 현존 규모는 직경 7m, 높이 4m , 둘레 34m 이다. 이 적대봉 정상에서 약 40m 남쪽 오천에는 봉군들이 주둔했던 대지가 있고 여기에서 남쪽으로 30m 지점에 우물이 남아 있다.  
송광암(松廣庵)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74
시 대 조선시대
지정사항
종 류 사찰
지정연월일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성춘경외, 1991, <고흥군의 불교유적>, <<고흥군의 문화유적>>

<<금산 송광암 연혁>>에는 고려 신종 3년(1200)에 보조국사가 창건했으며 조선 선조 3년(1570)에 선조 국사가 세웠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 대웅전 안에 건륭연간(영조 12년∼정조 19년, 1736∼1795)에 조성된 아미타삼존불도가 봉안되어 있어서 조선 후기에 불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7차의 중수를 거쳐 1954년 김원광, 최봉암 주지 스님이 8차 중수를 했다. 또한 1982년 손석봉 주지가 9차 중수를 했다.

1. 대웅전 목조삼존불 : 대웅전에 봉안된 나무로 만들어진 삼존불로 개금하였다. 본존불은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고 얼굴은 원만상으로 백호가 표현되고 목에는 삼도가 보인다. 법의는 통견인데 가슴 밑에서 ‘V’자형으로 조식 되었고 가슴에는 일자형의 매듭이 없는 띠가 보인다. 수인은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는 구품 22인을 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여래인 것으로 보인다. 결가부좌를 취하고 길상좌를 하고 있다. 양편의 협시불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중생하품인을 결하고 있다. 조성시기는 조선 후기로 추정된다. 본존불 높이는 0.67m, 두고는 0.13m, 안고는 0.13m, 안폭은 0.125m, 어깨 폭은 0.32m, 무릎 폭은 0.47m, 무릎 높이는 0.13m, 보살상은 0.54m이다.

2. 대웅전 삼장 보살탱화 : 대웅전 내에 액자로 표구되어 있다. 18세기 후반의 작품이다. 이 불화는 삼장 보살을 나란히 배치하고 협시와 권속을 배열한 구조이다. 가운데 삼장 보살은 수미단 위 청련화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2중 윤광을 등지고 화려한 보관을 썼다. 주존 하단 좌우로는 진주 보살과 대진주 보살이 대립하고 있다. 그 위로는 일월을 상징하는 일월 천중, 사공 천중, 십팔 천중, 육곡 천중, 제성 군중, 오통 산중 등 권속들이 대칭 묘사되었다. 향우측의 지장 보살은 이중 윤광을 등지고 보관을 쓰고 결가부좌를 하였다. 하단 좌우로는 용수 보살과 아미타 보살이 대립하고 있다. 그 위로 제견 우신중, 제금강 신중, 제팔부 신중, 제아수라 신중, 대락 차중, 나살 파중, 귀자 모중, 대하 천중 등의 권속이 묘사되어 있다. 향좌측에는 지장 보살이 권속을 거느리고 있다. 크기는 가로 2.75m, 세로 1.4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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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화랑 봉수(沙火郞 烽燧)

- 소재지 : 금산면 석정리 적대봉 봉수지(積台峰 烽燧址),


jeok_bonghwadae.jpg


이 봉수는 조선 중기에 신설된 6개 간봉중(間烽中) 사화랑 봉수로 비정된다.

현재 이들 간봉들은 대부분 유구나 지명들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 비정은 곤란하다.

그러나 일부 유구가 남아 있는 곳이나 지명(봉화산, 망매산) 또는 봉화불을 피웠다고 전해져 오는 곳에 대한 현지 조사의 결과를 문헌기록과 대조해보면 어느 정도의 위치 비정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유구가 남아 있는 곳으로는 금산면 석정리 적대봉 봉수지(積台峰 烽燧址), 도화면 구암리 가인동(속칭 봉화골) 봉화산봉수지, 동일면 덕흥리 동산 봉수지,봉래면 외초리 청석산 봉수지(靑石山 烽燧址), 영남면 우천리 우미산 봉수지(牛尾山 烽燧址)가 있으며, 지명(망매산)상 봉화터로 추정할 수 있는 곳으로는 도양읍 봉덕리 봉동 망매산, 풍양면 매곡리 망매산, 도화면 가화리 화옥망산이 있다.

또한 봉화불을 피웠다고 전해져 오는 곳으로는 도양읍 봉암리 비봉산, 도화면 발포리 도제산, 동일면 덕흥리 상산, 봉래면 사양리 사양도, 봉래면 신금리 진터산, 영남면 금사리 사도진 뒷산 등이다.

 

한편<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6개의 간봉들의 응소지역은 다음과 같다.

 

 지 지 명

연 간 

응 소 지역 

 세 종 실 록 지 리 지

 1454년

 북준 장흥 장기

 동 국 여 지 승 람

 1481년

 남응 유주산, 동응 마복산, 서응 장기산

 동 국 여 지 지

 1656

 남응 유주산, 동응 마복산, 서응 장기산

 흥 양 지

 1758년

 동응 마복산, 서응 장기산

 여 지 도 서

 1759년

 동응 마복산 봉수, 서응 장기산 봉수

 대 동 지 지

 1832년

 (원봉)

  호 남 지

 1925

 동응 마복산, 서응 장기산

 

 

위 <표>에 보이는 바와 같이 이들 6개 간봉들은 녹도진(현 도양읍 봉암리)과 사도진(현 영남면 금사리 사도)사이에 위치하며, 소포 봉수를 제외한 5개 봉수의 위치는 녹도진과 발포진(현 도화면 발포리 성촌)사이로 압축된다. 이를 토대로 6개 봉 기록과 현존 유구 및 지형, 지명등을 대조하여 간봉들의 위치를 추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가화 봉수는 봉화터로 전해져 오고 있거니와 지명에서도 서로 일치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현 도화면 가회리 화옥의 망산이 분명하며, 가내포봉수는 「가인(佳人)」은 「가내(加乃)」의 전음(轉音)의 가능성이 크고, 포구로서 적합한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봉화산에 현존하는 유구가 기록과 서로 일치하고 있는 점에서 도화면 구암리 가인동의 봉화산으로 비정된다.

 

또한 다고두 봉수는 봉수 기록 외에도 다른 기록을 통해 위치비정이 가능한데 즉 연산군 3년(1497) 2월25일에 발생한 녹도왜변, 동 3월의 돌산왜변, 연산군 5년(1499) 3월의 여도왜변의 영향으로 연산군 8년(1502) 8월 다고두보의 설치를 보게 된다.

 

이것은 선초 고흥포(풍양면 고옥리 축두)에 설치되어 있던 축두만호진 세종 17년(1435) 7월 소흘라량(所訖羅梁)을 거쳐 세종21년(1439) 4월 발포로 옮겨 발포만호진이 설치됨에 따라 녹도진과 발포진 사이의 옛 축두만호진을 비롯한 그 주변일대는 방어 상 취약지구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고두 봉수는 이들 지역으로 들어서는 해안의 가입부에 위치하고 있는 풍양면 매곡리 망매산으로 비정된다.

 

이 점은 가화봉수에서 이 곳 망매산에 이르는 해안일대에 중종 18년(1523) 풍안평 백석포 장성과 율현보성이 축성되는 점에서도 반증된다. 사화랑 봉수는 녹도와 발포양진과 상망(相望)의 거리에 있으며, 녹도에서 발포진에 이르는 해안뿐만 아니라 외양(外洋)을 모두 관망할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금산면 석정리 적대봉으로 비정된다.

 

한편 흑지두 봉수는 도양읍 봉덕리 봉동의 망매산이나 도양읍 봉암리 비봉산으로, 소포응소지역과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자세히 알 수 없다.

 

사화랑봉수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지지명

연간 

응소지역 

 신 증 동 국 여 지 승 람

 1531년

 서응가화, 동응소포

 동 국 여 지 지

 1656년

 서응가화, 동응소포

 흥 양 지

 1758년

 금폐

 

위의 기록에 의하면 사화랑 봉수는 요망한 적변(賊變)을 녹도진과 발포진에 연락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실제 적대봉에서는 녹도와 발포진 뿐만 아니라 이들 양진 사이의 해안과 주변의 먼 바다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흑지두 봉수는 서쪽으로 사화랑 봉수에 응하고 동쪽으로 가화봉수와도 서로 연락관계를 유지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회랑 봉수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산군 대 잇따른 왜변에 따른 대비책으로 다고두보를 설치하게 되는 연산군 8년(1502) 8월 이후에 설치되어 영조 34년(1758) 이전에 폐지되었다.


발췌: 고흥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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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바위, 노랑 모래, 회색 이끼, 초록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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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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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휘 2008.12.04 14:05
    고흥군의 선사유적(고인돌)은 저의 학사논문(전남대 문리대 논문집-고흥군의 선사유적, 1977)에서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지게 되어 게재가 되었음을 알려드리며 저는 신흥출신으로 서울대 최몽룡의 전남의 고고학 지명표를 공동으로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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